가깝게 지내던 지인께서 암 판정을 받으셨다. 그러고는 꽤 긴 시간을 치료를 하여 얼마전 거의 완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갑고 고마운 마음 한량 없었다. 젊으나 늙으나 몸이 아파오면 아픈 그 일보다 통증에 대한 두려움과 더 나아가서는 세상에서 내가 없어지는 일들을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되면 산다는데 대한 감사는 고사하고 삶이라는 그 자체를 아예 잊어버린 상태로 걱정과 불안과 짜증으로 하루해를 채우기도한다. 그런데 치료가 되었다고 하니 모든 일상이 새로 시작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살아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특히 병과의 사투를 벌이다가 하루하루 조금씩 병세가 호전되어 가면서 고통이 줄어들고 회복된다는 것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안심된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적응 하면서 느끼는 일이다. 그렇다고 매순간 그것을 느끼면서 사는 사람은 없지만 어쩌다 사소한 내 삶의 언저리에서 느껴질때가 있더라. 살아있는 일은 그냥 주어지는 평범한 일만은 아닐 진데 별 것 아니라고 여기며 살아 있는데 대한 아무런 감각없이 삶을 메꾸어 나가기도 한다. 이렇게 될 때 살아있는데 대한 고마움과 희열보다는 피곤함과 고달픔에 몸과 마음을 맡겨버릴 때도 있다.그러나 한 겹의 얇은 막을 벗겨내면 알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살아있으니 고통도 느끼면서 살수 있는게 아니겠는가?

살아 있어 좋은 일은 무엇인가?
‘인명은 재천’이라고 한다. 인간 스스로가 수명을 늘일수는 없지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맞이하는지에 따라 살아있어 다행한 일들이 드러나게도 된다. 이런저런 일들로 일상을 유지하지 못하다가 그동안 살면서 그다지 대단하게 여겨지지도 않던 일상으로 돌아올 때의 희열은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살아서 좋은 일이다. 그러고는 하기 싫어 미루어 두었던 일이 불평없이 손이 가게 되고 그동안 먹지 못했던 나물 한 접시 무치고 무우국 심심하게 끓여서 밥 말아서 목구멍에 쉬이 넘어가면 그때의 그 기분은 한껏 팽팽하게 부푼 풍선 같은 맘에다 아! 살 것 같네 이것이다. 또 다른 일이라면 평소 가족이라고 친구라고 맺은 인연들이 그냥 눈뜨면 보이고 지인들이라면 서로의 용무가 있어 소식을 주고 받으면서 살고는 있지만 그닥 애틋한 맘 없이 지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살아있다는게 소중하고 특별하여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일이란 걸 인식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나와 인연 맺은 이들과의 오늘 살아서 다시 만난다는 이 일이 대단한 일을 넘어서서 특별한 이유 없어도 의미 있고 반가운 일이며 조금 매끄럽지 못한 관계였을 지라도 살아 있어 좋은 일에 묻히고 말 것 같다.
함께 사는 가족이라 어련히 있겠거니 생각하고 소중한줄 모르고 살다가 어느날 문득 옆에 있어 주어서 고맙다는 맘이 들 때 살아있어 좋은 일이다. 자녀들이 ‘힘들다, 속상하다’ 고 푸념을 늘어 놓을 때 도움이 된답시고 몇 마디 하다가 핀잔만 받고 무시당한 기분일때도 있다. 그럴 때 ‘내가 살아서 아이들의 푸념 받이 라도 되어주는 구나’ 혹은 ‘나, 살아있어 좋구나’ 이다. 코로나 확진 검사에 음성으로 판정이 나서 아 ! 이것으로 죽지는 않겠구나 하고 후유 !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면서 살아 있으니 이런 일들도 하고 있구나한다. 아기의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우는 그 눈망울 속에서도 살아있는 내가 보인다. 살아있는 그 마음으로 살포시 안아서 달래줄때도 나는 살아있다. 남편이 오늘하루도 직장에 나가 일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는 퇴근길에 한통의 전화 목소리에도 서로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그러고 얼마 후 따끈한 붕어빵을 사다가 안겨주면서 ‘식기전에 얼른 먹어라’고 하는 그 손길에서도 우리는 살아있어 서로에게 고마워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살아있는 이승이 낫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얼마만큼 살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어진 그 시간이 얼마가 되든 보고 듣고 느끼는 그 모두에서 어쩌다 한번쯤 이라도 살아있음에 미소 지을수 있다면 하루하루의 이 세상살이가 고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눈 오고 비 오시는 날로 한동안 산길을 걷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냉냉한 날씨이다.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산길을 걷는다. 눈이 녹아 흐르는 시천같이 맑은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아 ! 살아 있어 좋은 날이구나 조용히 나에게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