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란 나무가 씨앗으로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잎과 꽃이 피었지만 그 잎이 꽃이 그냥 되어진 일은 아니었다. 그 과정에는 비도 내리고 바람도 불고 햇볕도 비추이면서 거름이 되어준 일이 있었더라. 지금에 와서야 거름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일들과
맞부닥쳤을때는 불편함이었고 힘겨움이었으며 벗어나거나 도망치고도 싶었으며 생각만 해도 온몸에 전율이 오는 일들도 있었다
이름하여 결핍과 장애라는 것이었다.

어떤 일들이었을까?
내 나이 19세에 엄마는 자리에 누우시더니 끝내 일어나지를 못하시고 4년후 세상을 떠나셨다. 엄마가 없는 삶이 어떤 것 인지를 생각조차도 못하고 살았기에 말 그대로 하늘과 땅이 있는 줄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온갖 것이 다 아쉽고 서툴기만 했던 엄마의 빈자리는 공허함과 슬픔의 연속이었다. 무엇이 채워지지 않아서 슬프고 공허했을까? 그것은 내가 엄마가 없다는 일보다 엄마가 있는이들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그러므로 인하여 집착이 생기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삶이 이어져 가고 있었다. 내 집에 냉장고가 없으면 남의 집 냉장고만 보일때가 있듯이…..

그런 일에 연관된 또 다른 일은 남편과의 결혼 이었다.
결혼한지 한달도 되지않아서 도박으로 귀가를 못할 때도 있었고 결혼 생활 자체를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질때도 있었다. 그럴 때에도 난 그 문제가 친정엄마의 부재가 화근이라고 여길 때가 많았고 내 삶을 누군가가 해결해주고 살아주기를 바랐던 것 같았다. 그 대상이 엄마였다고 하지만 엄마가 살아 있었다 해도 해결될 수 없는 일을 꿈을 꾸고 있을 뿐이었다. 나 역시 결혼생활안에서의 미숙아였던 것이었다. 결혼생활이란 것이 두사람이 만나 한집에서 살아가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서로의 행동반경이 드러나 알게 되는 일이
생긴다. 그것은 다름아닌 몸과 맘의 질병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바랄 때가 있기 마련이다.
남편은 자주 몸의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말했다.
그럴때면 고통을 호소하는 그 말에 대해 마음을 써 주기보다는 어떤 문제거리만 지적해 주거나 무시해 버릴 때가 많았다.그러다 ,내가 몸이 아플 때가 생긴다.남편 역시 내가 했던 것처럼 걱정보다는 짜증,도움보다는 문제거리를 지적하는 걸로 지나쳐 버리기 일쑤였다.분명,
두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여 도움을 받고 싶었을텐데 냉냉한 찬기만 흐를뿐, 더이상의 온기는 기대하기 어려운 시간만 흘러 보냈던 것 같다.

부부가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의 모자라는 점을 상호보완 해주면서 살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이론에 불과했다. 그것은 나의 배움이 짧다는 일로 우린 서로 도토리 키재기를 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위에서 나열한 힘겹고 장애가 되고 모자라서 채우고 싶었던
일들이 어떻게 거름이 될수 있었을까?
그것은 돈에 대한 이야기다.
돈이란게 그것이 있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돈이 없어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이 있음을 부인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남편이 일터에서 돌아와서 투정하고 언성을 높혔던 일도 돈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육아를 핑계되고 일을 나가지 않았다.그 일의 연장선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 돈으로 인한 궁핍한 생활이 돈에 대한 공부를 하게했고, 돈 벌러 나가지 못하는 댓가로 벌어온 돈을 어떻게 맞추어 살며 모으고 지키면서
불리는 일까지가 나의 일이었다.또한 돈벌이를 하러 나가는 사람에 대해 내가 해야하는 일의 폭을 넓히고 방법을 개선하는 일이었고 그 방법은 남편의 소득을 올리는데 적중하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서로의 결점을 들추어내어 서로 기죽이는 일보다는 서로의 장점을 더 인정해주고 키워나가게 하는 일이 바로 학벌과 학력에 관한 일이었다. 남의 눈에 보이기위한 학력이나 학벌은 스팩이란 말로도 대신하는 시대에 살고는 있다고 하지만 그것만도 다는 아닌 것 같다. 어찌되었건 나에게 있어 둘 다 내세울 것 없는 현실이기에 생활에 필요하다고 말만 하고 있지 않고 이런저런 공부를 찾아서 하는 재미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거름이 된 이유는 어느 누구와 비교하는 일이 한층 줄어들어가고 상대방의 능력과 장점이 시기와 질투가 아닌 인정해 주고 싶고 기뻐진다는 일이다.

소통
우리 부부의 소통의 관계에 있어서, 몸이 아프거나 불편할때에도 서로에게 의존함에서 자유로워져 가고 있다. 의존이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원망과 서운함으로 가지않고 자립의 길에 들어선다는 의미를 서로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밤중에 몸이 아플때가
있다. 혼자서도 응급실에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홀연히 집을 나서서 치료를 받고 돌아올때에도 상대에 대한 서운함보다는 나 자신의 대견함에 , 책임감에 흐뭇해한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신 뒤에 나의 결혼생활 내내 맘이 공허하면서도 목말라했던 엄마의 빈자리의 모두가
다 나쁜일 만은 아니었다. 난 스스로 나자신을 다잡으며 부지런해야 했고 단단해져야 한다고 마음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중독성향을 가진 남편과 살면서 견뎌내는 법을 알았고 애기셋을 낳을때까지 산간호를 받지못했기에 스스로 산간호를 하는 노하우가 생기게 되었다. 내 인생이란 나무에 가장 큰 거름이 되었던 일은 내가 결핍이라고 여기고 장애라고 불만했던 그 일들로 인해 내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병을 치료 할 수 있었다.

오늘도 난 두 딸의 친정엄마이고, 내가 살아있음에 삶이 참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