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한 사장이 푸른 꿈을 안고 밴쿠버에 도착한 해가 1968년. 당시는 한국 국적기가 밴쿠버에 취항하지 않았을 때였다. 김사장은 캐나다 태평양 항공(CPA; Canada Pacific Air Line)을 이용했다. 캐나다 항공사도 서울 김포에서 출발하여 밴쿠버로 바로 가는 직항노선을 운행하지 않았다. 해서 일본 도꾜를 경유하여 밴쿠버로 왔다.
당시 이민 온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 부자나라가 되어서 한국 국적기가 밴쿠버로 가는 직항노선을 이용할 수 있을까? 간절히 바라면 꿈은 이루어 지는 법. 20여년 후 자랑스러운 한국 국적 기 대한항공이 마침내 캐나다 직항 길을 열게 되었다. 1988년 11월 2일이었다. 당시 한인 회장이었던 김사장도 다른 교민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감격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1988년은 밴쿠버나 한국에 여러모로 상서로운 해였다. 그 해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16일간 ‘제24회 서울올림픽 경기대회’가 열렸다. 아시아에서 일본 도꾜에 이어 두번째로 개최된 하계 올림픽이었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한국의 발전상을 전세계에 알리는 획기적인 행사였다.
이를 축하라도 하듯 10월 초순 해군사관학교 43기 사관생도의 순항 훈련 임무를 수행하던 마산 함과 경북 함이 밴쿠버 항을 방문했다. 두 함정은 국산 호위함으로는 처음으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기록을 세웠다.
정기옥 총영사와 함께 한인회관을 방문한 함장의 얼굴이 참 믿음직하고 자신감에 넘쳐 보인다. 이를 보는 김지한 회장의 모습, 무척 대견하고 흐뭇해 보인다.
당시 한인회장으로서의 김지한을 보여 주는 일화 하나. 한국 정부에서 전세계 한인회장들을 ‘88올림픽’ 개막식에 초청했다. 정부에서 항공편을 제공했는데 그는 가지 않았다. 최근 김사장과 인터뷰를 하면서 사연을 들었다. 새로운 한인회관을 구입하면서 부동산담보대출(Mortgage)을 많이 썼는데 이자 갚기도 힘든 시점에서 한가하게 모국에서의 잔치를 즐길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바르고 강직한 그의 성정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성정은 가정교육에서도 들어난다. 장남 김선동(그랜트 김, 현 카이로프렉틱 닥터)과 차남 김형동(스티브 김, 현 코퀴틀람 시의원)을 키우면서 안동 김씨 집안의 명문 후손임을 각인 시키며 늘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교육시켰다.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두 아들을 각각 동부의 맥길대학과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에 유학을 보내면서 ‘홀로서기’를 위한 담금질을 잊지 않았다.
덕택에 두 아들은 교민사회 뿐 아니라 주류사회에도 기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부인 김 수 씨도 한몫 했다. 한글을 잊지 않게 하려고 직접 초등학교 교과서를 한국에서 구입해 가지고 와서 둘을 가르쳤다.
부부의 은퇴 후 삶도 본받을 만하다. 김사장은 2003년 한인신협 이사로 봉사하기 시작한 이래 다섯차례 이사장을 거쳐 현재 고령의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신협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다.
2023년 11월 4일에는 캐나다 신용조합 총연합에서 제공하는 ‘신용조합 이사 업무수행과정(Credit Union Director Achievement Program)을 이수하여 수료증을 받았다. 영어로 공부하는 어려운 과정인 데도 그의 열정은 연령을 초월하였다.
김 수 씨도 마찬가지. 미술에 재능이 있던 그녀는 56세부터 밴쿠버 화가 최귀암, 윤자권 제씨로부터 사사 받아 두번이나 전시회를 개최했다. 젊을 때 품었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민후배로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누구에게나 노후는 온다. 돈 벌기에만 몰두해서 각박한 인생을 산다면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때로는 주위를 돌아보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성공이다.

‘우리 때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민 와서 앞뒤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일했지만, 요즘 이민자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느긋하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느림의 미학, 이게 캐나다인 들로부터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정치에 따라 패가 갈리는 교민사회, 나와 조금만 의견이 맞지 않으면 비난의 화살을 날리는 작태. 이런 것들이 한인사회에서 사라져야겠지요. 교민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젊은 층을 믿고 지원해주는 양보심도 노년층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심, 그러니까 콩 한조각이라도 나눠먹던 초기 이민사회로 돌아가 모두가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협력하고 양보하는 풍조가 널리 번졌으면 합니다.’

이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김지한 사장, 그는 지금도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꺼이 개척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김지한 씨 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