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 기도하는/명예와 지위, 권세와 영광/그리고/그대 바친 재물/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만들어 주려고/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늘 찌를 듯한 첨탑과/대리석의 웅장한 건물에서/입으로만 주여, 주여 외쳐 대는 자들의/높임 받는 왕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깨알 죄 짐에도 온 밤 괴로워하는 이들과/영혼과 육체 그 상한 갈대들의 신음과/그들의 평안과 위로를 위해 함께 울며,/함께 고뇌 나누려고 왔습니다.

또한 생존의 전장에서/부딪치고 넘어지고/절뚝거리고 기어가며/한 끼니의 삶을 구걸하는 /거리의 내 어린 양들과

그들에게 온기 어린 손길/건네 주며/폐기 처분된 사랑의 불씨를/가녀린 성냥불로 이어 가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사랑 한 조각씩 주어 모아/아버지의 보물 창고에 부지런히/그리고 소중히 간직해 놓으려고/이 세상을 찾은 것입니다.

2018년의 마지막 달. ‘동방박사’ 세 사람이 한식당에 모였다. ‘불낙전골’ 시켜 맛있게 먹었다. 서로 운전을 해야 하기에 ‘쐬주’ 한 잔의 즐거움은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거의 동시대를 살아온 남자들. 이젠 머리 위에 서리가 내리고, 더 이상 꿈꾸어야 할 일 그리 없지만 마음은 금새 청춘이 되었다.
세 시간 동안 중년여성 못지않은 수다를 떨었다. 세시간이나.
종교인류학을 전공한 문박사, 의학전공의 이박사, 경제학 전공 필자. 아내가 이름 지어 준 동방박사 세 사람의 대화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예술 기타 등등 어느 한가지 거침이 없었다. 수다도 맛있고 음식도 맛있는 저녁 한 때였다.
화제는 ‘삶의 마지막’으로 옮겨졌다. 문박사는 얼마 전 LA에서 ‘잘 죽는 법(Well dying)’이란 주제의 강의를 하고 왔다고 했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부러워하듯이 오랫동안 잘 살다가 하루 이틀 정도 시름시름 하다가 세상 하직하는 것이 ‘웰다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문박사는 남은 가족의 허망함을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나날들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해야 한다. 본인 자신도 죽음이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다른 세상의 시작이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의 요지였다.
의학의 발달로 예전보다 확실히 평균수명이 늘었다는 것을 이박사가 증명했다. 과학의 발달로 삶의 질이 나아지니 더욱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의학과 과학의 책임은 거기까지. 인간은 결국 죽게 된다.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다가 문득 비 오고 바람 부는 한밤 잠자리에서 깨어나면 불현듯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온다고 내가 실토했다. 평생을 기독교의 그늘에서 살아왔지만 여전히 머리 속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서울 지하철 전도자의 소리가 맴돈다. 처음 교회를 나갔을 때의 그 뜨거운 열정이 세월 속에서 바래버린 지금, 내 나이에 교회 장로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은데 아직 나는 평신도인 것이 은근히 걱정스럽다.
평생을 교회에 다녔지만 나는 무엇을 위해 기도했나? 돌아보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경제학적 원칙에 충실하여 헌금은 최소한으로 요구는 최대한으로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경제학 박사가 되었나?
예수가 이 세상에 왔을 때 로마에 핍박 받던 유대인들은 이 고통을 해결해 줄 다윗 왕 같은 용맹한 구세주를 기대했다. 세상을 뒤집고, 로마인들에게 복수하는 세상을 꿈꿨다. 그러나 그들의 메시아는 복수대신 용서와 사랑을 이야기했다. 실망한 그들은 그를 거짓 예언자로 로마 총독에게 고소했고, 예수는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예수는 기도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지극히 낮고 가난한 곳에서 태어난 메시아. 그 첫 번 크리스마스를 동방박사 세 사람과 양치는 목동들이 경배했다. 예수에게서 지상의 권세와 영광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하여 등을 돌렸고, 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날 것을 고대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지켰던 사람들은 박해를 받거나 원형경기장의 사자 밥이 되었다. 대신 하늘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바라보며 담대하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 들였다.
오늘도 사람들은 대형 십자가 번쩍이는 대리석 교회건물 안에서 기도한다. 우리 남편 돈 잘 벌게, 우리 아들 출세하게, 우리 딸 좋은 혼처 나타나게, 투자한 부동산이나 주식가치 두 세배 뛰게, 예술, 문화, 스포츠 등 각종 경쟁에서 내가 우승하게 해 주소서, 주소서, 주소서—
‘모든 종교가 한국에 들어오면 기복신앙으로 바뀝니다. 부처건 예수건 마호메트건 대상만 다르지 사람들은 자신의 복만을 빌지요.’ 문 박사는 한국신앙의 결론을 내려 준다.

곧 크리스마스다. 우리 추석명절처럼 서양풍습은 오랜만에 헤어져 있던 가족들을 만나고 이웃 또는 친척, 친구들과 선물교환하며 즐겁게 보내는 것이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아주 잠깐만이라도 주변의 ‘성냥팔이 소녀(안델센의 동화)’에게 관심을 둘 수는 없을까? 성냥이 다 팔리기 전에는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소녀.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흥겹게 흐르고, 사람들은 선물을 사 들고 부지런히 집으로 향하지만 누구 하나 성냥을 사 주는 사람이 없다. 추위에 떨던 소녀는 남은 성냥에 불을 붙이며 몸을 녹인다. 작은 불꽃 속에서 따뜻한 벽난로가 있고, 식탁에는 칠면조와 함께 맛있는 음식 가득하다. 수많은 전구들이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는 선물이 가득하다. 그 환상과 함께 소녀를 부르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환영을 본다. 불 꺼지면 모든 환영이 사라진다. 소녀는 한꺼번에 남은 성냥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할머니를 따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천국으로 간다.
2천여년 전 첫 번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모두가 가슴속에 되살릴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된다면, 예수가 이 시대에 다시 와도 십자가에 처형되지는 않을 터인데. 이교도인 페르시아 동방박사 세 사람도 메시아의 탄생을 경하하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아기예수께 드렸듯이 모두들 나름대로의 사랑 한 조각 조각들을 모아야겠다. 그러면 예수는 그것을 하늘나라 은행의 저축예금 계좌에 입금하여 이자를 잘 불려 줄 것이다. 그것으로 천국에서의 삶은 모자람 없으리.
첫 번 크리스마스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 그것을 나의 ‘웰다잉’ 방법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하 많은 좋은 계절 다 두고 세월의 겨울에 접어드는 이 나이, 한 해 다 되어가는 이 달에야 비로소.

문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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