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폭포아래 어미품에 잠든 새끼새를 보라! 

폭포의 시끄러운 소리가 있으면 잠을   없다는 조건이 없기 때문에 아주 편하게 곤히 잠들어 있다. 폭포의 물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없고 고요해야 한다는 분별과 조건이 없기에 이럴  있다는 일이다. 생각하는 일에 있어서 조건을 걸고 분별함은 혼돈으로 치닫게 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골치가 아파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골치 아픈 일을 해야 하는 일이라고 아무 의심도 없이 하면서 괴롭네하고 있고 이것은 혼돈과 함께 살기 위해서 불을 지고 섶을 들어가는 꼴이다. 혼돈  자체가 우리를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그것에 우리의 행위가 보태지면서 우리의 일상이라 여기고 힘들어 하면서도 끌고 다니는 짐덩이라고도   있고  다른 표현으로는 갈등과 번뇌 또는 에고라고도 이름부친다.  

 

그렇다면 혼돈에 반대되는 다른 세상은 어디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곳이 질서의 세상이라고    있는 곳은 없다 이곳은 겉으로 드러난 어떤 것으로는 설명할 수도 없고 딱히 이게 질서다 행복이다 말할 수도 없으며 마냥 그렇게 살아갈 수도 없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동경하고 애쓰며 혼돈에서 벗어나면 질서가 잡힌  세상이 있을거라고 이런 저런 방법으로 발버둥을 치고 있을까? 그것은 자신의 혹은 세상의 어떤 힘으로 어떻게 하면   같고  갈등과 고통이라는 존재감을 인정하고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를 유발시킨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질서로 인한 평등은 어떤 일일까? 

깨달음의 진실이다.  깨달음 우리의 의지로 취할  있는 일은 아니다 . 어떤 방법에 의해서가 아닌 발심을 내어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날 인연이 닿게 되고 성경에서도 말하듯이 그때는 도둑처럼 찾아오고 문득 알아차리게 되며 혼돈과 질서를 분별하여 나누지 않아도 삶이 여여하고 그럼으로 인하여 이런저런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평상심 깨달음 얻게 된다. 혼돈으로 인한 갈등과 번뇌 또한 우리가 반대라고 여기는 질서가 동률선상에 있다면 믿을  있겠는가? 

 아이러니한 일이 있다. 질서를 세워야하겠다고 하는 일들이 혼돈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면 그저 질서라는 내가 아는 단어, 그것을 좋은 것이라고 믿는 허상에 속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진실은 무엇인가? “질서” 라고 말하는 “이것 진실이고 깨달음이라는 것이고 “혼돈 “이라고 말하는 “이것 이다는 것이다. 

 

혼돈이라고 명명할수 있는 것은 

 

좋고 나쁨이라는 분별을 하는 이런 일들이 혼돈이다. 물에 물결이 일어났다 가라앉았다 하는 것과 같은 똑같은 현상일뿐인데 그것을 물결을  일으켜야하네 잠재워야하느니 혹은 좋은 물결 그렇지 않은 물결이라고 분별하고 있다. 마음도 일어나는 현상일 뿐인데 바꿔야 한다느니 나쁜 맘은 버려서 평화롭고 안정된 맘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분명 혼돈 뒤의 질서를 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은 반대편에 서있는 대상이 아니다. 굳이 경험해 보았다면 “아이 맘이  이렇게 혼란스러울까?” 혹은 “이거 어떻게  치워버릴수 없을까?” 이런 상태에 익숙해져 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혼돈이나 질서는 (언어)일뿐이고   본성을 안고 있고 평등하다는 것이며  본성을 드러내는데 사용되었을 뿐이다. 집짓는 자들의 버려진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하듯. 

 

우리의 분별과 판단만 없다면, 혼돈은 가만히 두어도 제자리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가만히 둔다는  보통 경지를 넘어섰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가만히 두게 되는 일이 어차피 시간보내는 일이라 이래도 저래도 힘든 일이라면  본성을 깨닫는 마음공부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자신을 위한 안심되는 하루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