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은퇴한지 한 달도 안 된 새내기 백수다.
백수를 해본지도 40년이 넘어서 백수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경험한 것들은 다 잊었고 지금 그 의미는 변질되고 시대도 나도 변해서 그 뜻을 정립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다. 그래도 기본적인 의미는 일을 안 한다는 거니까 내가 지금 정말 일을 안 하는지 꼼꼼하게 따지긴 해야 할듯하다. 가령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건 일일까? 아닐까? 잔디를 깎는 일, 집안 청소를 하는 일, 식료품을 사러가는 아내를 모셔다 드리는 일, 전에도 하던 일과 새롭게 하게 된 일이 어떤 일은 일이고 어떤 일은 일이 아닌지 규정하는 일, 규정하는 이일도 일인지 아닌지? 세상을 엄격하게 살고 싶었지만 아내보다는 언제나 엄격하지 못하고 느슨하다. 보통 다른 집에서도 여자를 공자에 비유한다면 남자는 노자에 비유하곤 한다. 말이 좋아 노자지 분명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고 게으르다고 말해도 될 듯하다.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 후반에 나는 10만 불만 있으면 은퇴하겠다고 장담했었다. 그것은 10만 불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10만 불이 큰돈이기도 하다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것도 나에게 오면 큰 것이 되기 일쑤였다. 아내는 나를 일하기 싫은 사람의 표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에게 별 뾰족한 무슨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나는 계속 일을 했다. 그러다가 가게를 사고 34년, 열심히 일한 건 아니래도 (아내의 판단으로) 매일 일하기는 했다. 신발을, 구두를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친 결과 수많은 신발을 고쳤다. 애초부터 의도한 건 아니래도 주변머리가 없어서 가게를 팔지도 업종을 바꾸지도 못한 결과일 뿐이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나이를 먹어가고 젊어서는 없던 당뇨라던지 혈압이 높다던지하는 새로운 친구를 갖게 되었고 아직까지는 그 친구들과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불안감과 먹어가는 나이 때문에 가게를 접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을 해야 오래 산다는 데, 수입이 있어야 오래 산다는 데, 심심해서 못산다는 데. 등등 조언도 많았고 막상 그렇게 하는 사람도 많았고 그렇게 하지 못해서 건강하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오래 살기 위해서 죽을 때 까지 일하는 건 나는 싫었다. 재정은 남의 신세를 지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분수에 맞지 않은 많은 돈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평소 나의 신념이다. 내가 어딘가에 소비하고 싶을 때 내 돈으로 쓸 수 있다면, 엄청나게 많은 돈을 쓰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된다면 주제넘게 많은 돈은 필요하지 않다. 뉴욕시가 내 것이라도 평생 그것을 내가 쓸 일이 없다면, 쓰지 않고 죽는다면 뉴욕이 내 것인 것과 아닌 것과 무엇이 다르겠냐는 생각이다. 나는 남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욕심낼 만큼 자존심을 훼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을 때 내가 원하는 대로 쓰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남들의 눈에 헤프게 돈을 쓴다고 보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만족하고, 왕소금처럼 굴거나 식당에서 가장 신발 끈을 오래 매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껴서 쓰지만 내가 쓸 돈은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물려줄 자식이 없는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가게를 접자고 생각하니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이 밀려왔다.
언제? 어떻게?
아침이면 별 생각 없이 나가서 일하고 시간이 되면 퇴근하고 일요일은 쉬고 주말에는 한 잔하고 시간을 만들어서 없는 시간에 친구를 만나는 일은 타성이면서 행복이기도 했다. 이런 일상에서 변한다는 건 간단히 말해서 스트레스였다. 몸과 마음이 늙은 지금의 나는 새로운 일, 새로운 환경이 솔직히 두렵다. 그냥 편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오랜 시간 굳어져서 나를 해이하게 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가게를 닫는 데는 많은 귀찮은 절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하던 물건 구입을 멈추고 가게 문을 닫을 때 까지 남아있는 재료를 능률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남아도 모자라도 안 된다. 가게를 닫는다는 것은 가게의 죽음을 뜻한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이를 먹으면서 어떤 사람은 간이 나빠서, 콩팥이 나빠서, 심장이 나빠서, 그것이 죽음의 원인이 된다. 빨리 죽는 병도 있지만 팔다리가 아프다고 죽지 않는 것처럼 슬슬 죽는 병도 있다. 능률적으로 살기도 능률적으로 죽기도 쉽지 않다.

드디어 나는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10월까지 장사를 하기로 하고 5월부터 6개월 동안 내가 원하는 어느 정도의 퇴직금을 만들 수 있다면 된다. 목표액도 정하고 거기에 대한 점검과 더불어 모든 주문을 중단했다. 우리 가게는 구두수선도 하지만 카우보이 부츠, 벨트, 모카슨(Mocassin), 가방 등 가죽제품도 판다. 지갑이나 가방은 그 상품을 살 때 색이나 디자인 등 기호나 마음에 드느냐 들지 않느냐가 조건일 뿐이다.
하지만 신발이나 벨트는 사정이 다르다. 사이즈가 있기 때문이다. 발이 작은 사람에게 큰 신발을 권할 수 없으며 큰 발을 가진 사람에게 작은 신을 팔수는 없다. 50인치 이상 길어야 하는 배불뚝이가 짧은 벨트를 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사이즈 10 신발을 팔았는데 또 같은 사이즈 10만 찾는 손님이 계속 온다면 물건을 파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저 재수가 좋기만 바랄 뿐이다. 장사를 계속 한다면 빠진 사이즈를 새로 주문해서 팔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장사를 접는 가게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없는 사이즈를 찾을 때 손님이 물어오는 ‘언제 오면 살 수 있나요?’라는 질문은 나를 곤혹하게 한다. 나는 다시 그 물건을 들여오지 않을 테니까.
팔수 있는데 팔수 없다는 것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이것은 어쩌면 장사의 문제가 아니라 욕심의 문제다. 나의 욕심을 조절해야 하는 일이다.
평소 장사를 할 때도 잘 팔리지 않는 아주 크거나 작은 사이즈를 팔면 더 기쁘다. 다음 손님이 또 아주 큰 사이즈를 사는 손님이라는 보장도 없고 잘 팔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확률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수선도 마찬가지다. 수선의 종류에 따라서 다른 종류의 재료를 사용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료를 쓸 수 있는 손님만 오는 건 아니다.
결국 나는 다 팔지 못한 많은 물건과 재료를 많이 남기고 약간의 떨어진 재료를 친구가 하는 가게에서 빌려오면서 10월 말을 맞았다.

다행인건 모든 물건에 더 이상 원가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파는 것이 모두 남는 장사란 물건을 누가 주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해서 원가가 없어야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나는 돈을 내고 사오긴 했지만 더 이상 물건을 사지 않게 된 때부터 내가 갚아야 할 원가가 없어 졌다고 생각했다. 그 물건은 가게를 시작했을 때부터 조금씩 저축해 놓은 나의 여유자금이다. 그 동안 가게를 유지하고 밥 먹고 살았으니 우리에겐 여유지 꼭 팔아야하는 물건은 아니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이렇게 나는 완전하게 은퇴했다.
그리고 나와 나의 아내는 가진 것만을 써야하는 백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