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세상에는
띠뜻한 분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주말에 받은 한 어머니의 문자다.

이렇게 글을 시작하는 오늘은 조금 무거울 수 있는 소재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며 시작하려고 한다.
교육에 사업이 붙여져 불리우는 우리의 일은 언제나 고뇌가 필요한 일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어른들의 몫은 사랑이고 책임이다. 하지만, 가끔은 ‘돈‘이라는 일의 도구와 부딪히게 되면서 교육의 모습은 사라지고 부끄러움만이 남는 경우도 종종 생기게 된다.

유학생들의 삶은 변수가 많은 생활이다. 학교나 홈스테이를 이동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안정된 생활이 유지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동이 시작되고 중간에 에이전시가 개입되어 있다면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작년 코비드19으로 인해 학교의 오프라인 대면 수업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유학생들의 고국 이동은 학교와 숙소, 또는 학원 등과의 환불 문제로 마찰이 있었던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던 것으로 들었다. 학생 입장에서는 불합리한 경우가 되었고 상대들의 입장은 합당함이었지만 어찌되었든 이 문제들의 분쟁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가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우리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하였기에 누구의 편을 들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코비드19으로 인한 헤어짐은 아니었지만…
세컨더리 학생들의 자유분방한 사고와 무례한 행동은 더 이상 아이들을 돌보는게 어려워짐을 인지하게 되었고 어린 학생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끝맺음의 선택은 깨끗한 이별이었다.

학생을 이익으로 보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고 상처 주지 않는 것이 바람이었기 때문에 많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큰 아이들에게 좋은 결실이 될 새출발을 원하였던 것이다.
누구하나도 손해되지 않게 마무리를 하고 챙겨 보내었던 마음에는 응원도 있었지만,
사실상실감이 더 컸던 것은 그들에게 내어 준 마음이 이유인 것 같다.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함께 지내며 추억이 많은 시간이었고 싫은 소리 한 번 내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저 아쉽고 슬픈 기억이 되어버렸다.

11년간 많은 아이들과 생활하며 느낀 것은 생각보다 세대차이가 꽤 커진 시간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대학생들과 세컨더리 학생들의 갭이 크지 않다고 여겼던 것은 실수였다. 네 다섯살의 차이는 생각의 근본부터 달랐기에 그들의 세계를 인정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요즈음의 아이들에게 성인이 되기 전 이성교제 자제를 부탁하거나 인간 관계의 에티켓을 가르친다는 것은 사실 어리석은 꼰대의 모습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학교를 마친 후 러닝센터에서 학업을 더 이어가야 했으니 자유가 목마른 아이들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이 대상이 중 고등학생 이상이 된다면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어리석은 꼰대였던 우리가 그것을 하려고 하였으니… 머리 좋은 젊은 세대에게 보기 좋게 차였던 것이고 그저 세상이 변하였음을 인정하는 것이 속 편한 선택이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또 한번 세상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 시간 가장 외로웠던 것은 학생들을 인계하였던 관리자들의 모습도 있었다.
아이들의 앞날을 염려하는 마음 보다도 학생 한 명을 놓친다는 아쉬움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며 그냥 많이 외로웠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돕는 교육자로서 시작된 업무는 어느 덧 수익이 우선인 모습으로 자리잡았으니… 안타까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면, 어린 아이들의 미래는 누가 진심으로 돕게 되는 것일지에 답답함이 생기기도 하였다.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이 홀로 온 학생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부모없이 와서 그렇다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런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먹고 입고 누리는 것을 더 신경 쓰고 옷이 조금만 작아지거나 더러워져도 그리고 손발톱이 약간만 자라도 마음이 쓰이는 것이 부모 마음인 것을 알기에 모든 게 쉽게 여겨지지 않는 나의 자리이다. 아이들에게 지출되는 비용을 이익 때문에 아끼려 해 본적이 없는 것도 그저 부모 마음이고 싶은 이유이다.

그런데 같은 길을 걷는 우리네들이 이익은 알고 책임은 모른다 하니 그 현실이 아픈 것이다.
이제는 같은 마음으로 움직이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기만을 소망한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이 곳 밴쿠버에는 아이들이 잘 성장하기를 바라고 돕는 조력자들이 힘을 실어준다. 그들이 바라는 마음도 우리부부와 같다.
내 아이들이 가시 밭길이 아닌 꽃길만을 걷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혼자가 아닌 보호자가 되어주는 따뜻함인 것이다.

아이들과의 삶을 선택하였을 때, 한 가지 다짐한 마음이 있다.
분명히 이 길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쩜 생각하였다 것보다도 더 고된 일이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올바른 모습을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고 이익 때문에 아닌 일을 마치 옳은 일처럼 포장하며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맛있어요. 재미있었어요. 감사해요.”등의 표현을 하는 순간 힘듦은 없어진다.
나의 고됨은 아이들의 입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한 유학생활’이라는 선물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지금도 이 일을 하는 이유이고 함께 나누는 부모님과 아이들, 조력자들의 마음에 감사함을 전하는 표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