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편지를 쓴다. 귀한 책을 보내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 편지다. 요즘은 이것이 월례 행사가 된 것 같다. 한 주에도 몇 권씩 받게 되는 창작집들, 받으면 바로 읽고 축하의 글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우선 받은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걸 바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서 틈나는 대로 읽고 감사 편지를 쓰는 것을 특별히 한 날을 빼내 할 수밖에 없다.
 
한 권의 책을 내기까지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그걸 편히 앉아 받아 읽는다는 것만도 송구스러운 일이 아닌가. 책이 출간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서점으로 달려가 사서 읽고 축하를 해야 할 일이건만 그걸 못 하고 사는 게 현실이다.
 
얼마 전엔 이사를 하여 짐을 정리하다 보니 그 동안 모아두었던 편지들이 나왔다. 내 책을 받아 읽고 쓴 축하의 글이 대부분인데 엽서도 있고, 축하 휘호도 있다. 친히 먹을 갈고 붓을 들었을 그 분들의 마음과 봉투를 쓰고 우표를 붙여 보내는 따뜻한 마음과 정성들이 편지 하나 하나에서 전해져 온다. 모두가 나보다 한참이나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고 한편은 죄송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사실 요즘 젊은 문인들은 이런 부분에 참 취약하다. 몰라서인지, 아니면 문명의 이기에 너무 편중되어 그런 건지 알 수 없지만 전화 한 통보다는 엽서 한 장이 낫고, 엽서 한 장보단 봉함 편지 한 장이 더욱 정성스럽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나는 몇 분의 원로 문인들을 통해 참으로 큰 가르침을 받았었다. 그냥 책 보내줘서 고맙다고 전화 한 통 주셨어도 감사할만한 일이건만 몇 장씩 되는 장문의 편지로 작품에 대한 평까지 보내주신 것을 보면서 얼마나 감동 했는지 모른다. 그 중에도 특히 잊혀 지지 않는 분이 있다. 모헌慕軒 박규환 선생님이시다. 1995년 <날마다 좋은 날>이란 수필집을 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금을 받아 출간 했는데 문단 어른 몇 분께 보내드렸었다. 그때 모헌 선생님께선 장문의 독후감을 겸한 축하 편지를 보내주셨다. 그리고는 바로 얼마 후 수필집을 내시자 그걸 잊지 않으시고 책을 보내주시면서 내 책 얘기로 인사말을 곁들이셨다. 10년이 지나 수필집 한 권을 다시 보내드렸다. 그런데 그 때는 병석에 계셔서 편지를 쓰실 수도 없는 상태셨다.
 
퇴근해서 오니 전화 메모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너무 늦은 시간이라 전화를 드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퇴근하니 또 전화를 하셨다라는 것이다. 그 날도 역시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라 전화를 드릴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조금 일찍 집에 들어올 수 있어서 오늘은 내가 전화를 드려야지 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전화가 또 왔다. 너무나 죄송했지만 반가웠다. 문인이 책을 받았으면 최소한 엽서로라도 받았다는 몇 마디를 해야 하는 게 예의인데 병석에 누워 글을 쓸 수 없으니 너무 예의가 아니다. 해서 직접 통화라도 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연결이 되지 않아 내 마음을 전해 달라 했지만 그 또한 마음이 불편하여 이렇게 직접 통화라도 하고 싶어 다시 전화를 하셨다는 것이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서 하는 전화이니 이 점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 분들은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는데 우리는 어찌 했단 말인가. 한 권의 책을 받는 마음이 이러니 한 편 한 편 작품을 만들어 가시는 마음이야 오죽 정성이었겠는가. 그러니 그 마음이 독자에게 전해지는 것이고 공감이고 감동이지 않겠는가.
 
선생님은 가셨다. 그러나 지금도 선생님께서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써 보내주신 축하의 글월과 마음, 글을 쓸 수 없어 전화라도 한다고 병석에서도 세 번이나 전화를 주셨던 그 마음, 그 음성은 내가 살아있는 내내 결코 어길 수 없는 가르침이 되고 있다.
 
나는 솔직하게 모헌 선생님처럼 그렇게는 하지 못한다. 그러나 가능한 한 받은 책에 대해서는 친필 편지를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어쩔 땐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빠뜨리지 않으려고 무던 애를 쓴다. 그래도 너무 가깝기에 오히려 챙기지 못하거나 본의 아니게 빠지는 것도 있다.
 
편지란 마음이다. 정성이다. 사랑이다. 그리고 존경이다.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정중하고 큰 표현이다. 내겐 그런 소중한 마음과 사랑이 깃든 선생님들, 선배들, 문단 동료들의 편지가 꽤 된다. 한참 전엔 그것들을 정리해 보고자 봉투를 펼치고 내용도 펼쳐 사본을 만들었었다. 금방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이 되었다. 너무 많아 다는 하지 못했는데 이제 시간을 내어 다시 그 작업을 할 것이다.
 
육필肉筆이 사라지고 있다. 문인이라면 가급적 글로 축하하고 답을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걸 지켜가려 애쓰는 내 마음 속에는 내가 받은 편지의 감격과 감사가 지금까지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마음이 울적해지고 글이 써지지 않을 때 나는 버릇처럼 편지 상자를 열어 그것들을 읽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벌써 이 세상에 아니 계신 분들도 여러 분이다. 만날 수 없는 분들을 그나마 그 분들의 필적으로라도 만난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내겐 큰 축복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권 한 권 책을 펼쳐 읽으면서 편지를 쓴다. 그 분들이 내 이름을 써서 보내준 아름다운 마음의 선물에 감사하며 그분들의 문학세계에 빠져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 손수 펜을 들어 쓰는 몇 자의 편지 속에는 문학사랑 마음과 책을 펴내기까지 힘들고 어려웠을 것들에 대한 위로와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출간을 한 장함에 대한 축하에 나를 기억하고 보내준 데 대한 감사와 사랑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작품은 편리를 따라 컴퓨터를 이용한다 하지만 마음을 전하는 데만이라도 육필을 고집하고픈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까. 그러나 내가 받은 증정본도 육필로 내 이름이 새겨있어야 선뜻 펜이 들리는 것을 어쩌랴.
 
과학문명은 사람들을 편리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지만 그 편리함이라는 것이 때론 지극히 인간적일 수 있는 것들을 매몰시켜 버린다는 것을 우린 잊고 있다. 이 편지를 다 쓴 다음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에게도 편지를 써야겠다. 인쇄 편지나 e-메일만 받다가 내가 직접 써서 보낸 편지를 받고 봉투를 뜯고 그 속에서 나온 편지를 신기한 양 만져보며 읽어갈 녀석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나도 몰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 글쓴이 | 최원현
★ 호 늘샘, 수필가·문학평론가,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 사)한국문인협회사)국제펜한국본부 이사, 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 강남문인협회 회장·한국수필작가회장 역임.
★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 수상,
★ 수필집 《날마다 좋은 날》 《오렌지색 모자를 쓴 도시》 등 14권. 중학교 교과서 《국어1》 《도덕2》 및 고등학교 《국어1》 《문학 상》 등 여러 교재에 수필 작품 수록.문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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