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가 사납게 암상을 부릴 때 콧등에 깊은 주름을 잡은 것 같이 매봉산을 정점으로 해서 힘차게 내려 뻗은 산 등성이를 따라 느려지기를 기다리면 꼬리를 갈무리하는 분지에 두둥 마을이 있다.
골마다 맑은 물이 흐르고 추운 겨울에도 손이 시리지 않다는 더우실과 어울려 안개가 생기고 그 안개가 구름이 되어 산을 타고 올라가면 마을이 구름가운데 두둥실 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두둥 마을이라 했다.
예전엔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고 살았다는데 그때는 여기저기 흩어져 제법 큰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은 더러 떠나고 겨우 이십여가구 삼십여명 남짓이 사는 오지마을 이다. 그것도 젊은이들은 도시로 거의 떠나고 일에 지쳐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만이 일년에 두어번이나 올가말가 하는 자녀들을 기다리며 목을 늘이고 산다.
정도치와 그의 안사람은 삽십여년전에 이 마을로 들어올때 갓 혼인을 하고 살러 왔다고 했다.
어디서 왔느냐는 물음에 그저 동쪽에서 왔다고만 했다. 이상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행색을 살펴본다. 신랑은 기골이 산맥 같으나 눈 꼬리가 사납지 않았고 지게 위에 한참 아래로 보이는 각시는 짙은 병색을 띄고 있었다.
“저 여자 보쌈해 온 것 아니여…?”
“도망 꾼 같은디…?”
“뭔 사정이 있것지”
마을 사을람들은 제 멋대로 상상하며 수군거렸다.
이들 부부는 마을 주민에게 버리다시피 팔고 떠나는 다랑논 두어두렁과 돌밭 몇고랑으로 생활의 터전을 잡았다.
어느날이다. 밭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 오는길이다.
“이보게 새신랑 나 힘좀 빌려 주고 가게.”
걸직한 쇳소리가 뒷통수에서 들려 왔다. 보지 않아도 윗집에 혼자 사는 권씨 할매인걸 안다.
“안녕 하셨시유 …?”
“인사치레는 할 것 없고 저 벌통 좀 옮겨 주게…옳치 저 장독대 옆이 좋겠구먼”
정도치가 가볍게 옮겨 놓았다.
“꿀을 내다 파시게유… ?”
“아녀 내가 먹고 오래 살려고 헤헤헤..”
팔십대 노 할매는 일을 시킨다는 미안함 때문인지 몇 개 남지 않은 이를 드러내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러다가 생각 난듯 묻는다.
“자네 각시가 아프담서 ? 어디가 아픈겨 ?”
“매일 골골 하지유…”
“어떻게 아프냐니께 ?”
댓돌에 앉으며 따지듯 물었다.
“별 탈은 없는 것 같은디 몸이 나른하고 전신에 힘이 빠져서 기신을 못해유..”
여기까지 말을 하자 성질 급하게 달려 든다.
“병아리 마냥 졸지는 않고 ?”
“속이 답답하고 잘 때 헛소리는 않던가 ?”
“구역질은 않는겨 ?”
꼬치꼬치 의원처럼 다긋쳐 묻더니.
“하루에도 몇차례씩 자지는 않던가 ?”
“낮이고 밤이고 자면서 살지요..”
“그려 ?”
권씨 할매는 무엇인가 집히는 것이 있다는듯 잠시 가늘게 눈을 뜨고 생각에 잠기더니 뚝 터지는 소리를 한다.
“고이한것. 가 보세”
바지에 먼지를 털어내며 힘차게 일어난다.
“자네 각시한테 가자니께~”
지팡이를 집어들고 앞장을 선다.
정도치가 어정쩡하게 뒤를 따랐다.
마침 새 각시는 늘 그렇듯이 쪽 마루에 조신한 몸매로 앉아 있었다. 권 할매는 맥을 본다며 덥석 각시의 손을 잡고 막걸리를 음미하듯 지긋이 눈을 감는다. 이산에서 놀던 새 떼들이 저산으로 몰려 갈때쯤 되었을까? 손 끝에 힘을 모으고 가볍게 입술이 떨리면서 잔잔한 미소가 떠 올랐다.
다음 순간 “그리여 ! 그리여 !” 소리를 연발 하던 할매가 졸리운 송아지가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하듯 껄껄걸 길게 웃는다.
“나하고 똑 같구먼..핫하하 이제 자네 각시는 살았으니께 아무 걱정 말게 핫하하..”
권 할매는 어린애 같이 즐거워하며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우리 아버지는 장똘뱅이 돌팔이 의원이였는디 우리 고향에선 제법 소문난 한의원 이었다니께. 내가 알수 없는 병으로 드러눕자 장사는 뒷전으로 미루고……”
권할매는 팔소매를 걷어 붙이고 신바람이나서 얘기의 꽃을 피웠다.
덤덤하게 얘기를 듣고있던 각시가 돌팔이 한의원이란 말을 듣고 갑자기 반응을 일으켰다.
“그래..그 돌팔이 한의원 때문에 생전에 알도 보도 못한 노총각과 인연을 맺게 되었지.”
각시는 밥술이나 먹는 농가 집안에 삼남일녀인 막내로 태어났다. 집안에 꽃이요 귀여움을 한 몸에 받고 자랐으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들어갈 즈음…시름시름 앓더니 동네 친구들이 공부를 마치고 출가해서 자식을 낳을 때 까지도 일어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눈물로 세월을 보냈고 아버지는 자식이 처녀 귀신이 되는꼴은 못보겠다며 의사,박사 유명하다는 한의원으로 손을 썻으나 모두가 헛 공사였다.
숨이 찬 물매기처럼 헐떡거리고 있는 숨소리에 애간장만 태울 때였다.
지리산에서 수년간 도를 닦고 한의서를 연구 했다는 돌팔이가 찾아 왔다.
제법 염소 수염을 기르고 목을 곤두세워 한마디 한다.
“나는 맥을봐서 되면된다 안되면 가는 사람이니께..뭔 부담을 갖겠소..어여 환자나 봅시다.”
환자 보기를 재촉하자 다급한 마음에 자세한 증상을 얘기하고 맥을본다.
처음에는 신선처럼 몸을 흔들며 알수없는 콧소리를 내더니 잠시후 표정이 굳어 지며 성질을 낸다.
“이런. 젠장”
신 김치쪽을 씹은 표정이 되더니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가 뒤를 쫓아 나갔을 때.
“나는 안되니께 다른 사람을 부르시요..병명은 알고 있겠는디..치료 방법은 모르겠오..”
크게 실망한 아버지는 애원하듯 물었다.
“뭔 방법이 없겠는가?”
“한가지 방법이 있긴 한디..어렵지라우..”
“자식이 죽는디 어려운게 대수여?”
먹먹하게 한참이나 먼 산을 바라보던 한의가 귓속말로 말했다.
“혼인을 시켜유..음양이 합하면 혹시 구할수도 있으니께..”
“뭐여 ?”
울컥 성질을 내려다가 예전에 어떤 한의도 같은 말을 한는것을 기억했다.
“그려..집에서 죽으나 나가서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니께 처녀 귀신이나 면 해줄 것이여..”
독한 마음을 먹고 매파를 풀어 신랑감을 구했다.
그러나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병쟁이로 소문난 딸년의 신랑감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달포나 지났을때 눈에 총기가 가득한 감나무집 할매가 생색을 내며 찾아왔다.
정도치라는 총각이 있는데 나이는 사십이 코 앞이고 가진건 없어도 성실하며 기골은 소도 때려잡을 만 한디..혼자 산다고 했다..이것 저것 따질것도 없이..아예 여기로 정하자고 다그쳤다.
허긴 딸년이 저 모양인디 뭘 더 바라겠는가.
서둘러 날짜를 잡아 상견례를 치른후 그밤으로 지게에다 신부를 태우고 이 두둥마을로 들어온 것이다.
“그 병이 무언고 하니 허생백병(虛生百病)이라고 하는 것인디..”
권씨 할매는 얘기 끝자락에서 숨이 찬듯 헐떡 거리며 냅다 짙은 가레를 내 뱉는다.
“나는 비방 때문에 살았다니께.. 우리 아부지 은덕으로 시집와서 좋은세상보고 영감이 죽자 소금장사로 자식 셋을 여읜 사람인데 내가 시방 병쟁이 같이 보이는가? 하하하..”
개선 정군이라도 된듯 호탕하게 웃는다.
“가세~집에 비방이 있으니께.. 시집올 때 아부지가 적어준 것인디 내가 신주 단지 모시듯 잘 간직하고 살았네.” 장난스럽게 삐죽히 웃으며 바라본다.
“만약 자네 각시가 이 약을먹고 나스면 내게 무엇을 해주겠는가?”
도치가 당황하여 말을 더듬는다.
“그그…”
“겁낼 것 없네 내가 죽거든 가마니에 둘둘 말아서 영감옆에 묻어 주게..하하하..”
권 할매는 길게 웃음을 흘리며 습관처럼 알수 없는 가락에 몸을 맡기고 느릿하게 언덕길을 올라간다.
“잘생긴 내 아들은 며느리가 차지하고
일 잘하는 내 딸은 사위가 가져가고
쓸모없는 이내 몸은 북망산이 욕심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