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음이 소리내 오고 있었네. 눈앞에 펼쳐진 여기저기에서 !
봄이 오는 소리는 눈으로 보이는 이쁜 모습도 있지만 봄나물의 상큼하고 입맛 도는 맛있는 소리도 있다. 내 나이 사십고개를 넘어서 밴쿠버까지 와서 올해로 스물 여섯번째 봄맞이를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내 고향에서의 봄냄새가 그리워질때도 있지만 눈앞에 펼쳐져 있는 산하대지와 계절의 바뀜은 어릴 적 그 때의 흙냄새 풀냄새와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흔히들 이민오면 몸살을 한다고 하는데 그 시간들도 흘러 가주었고 내가 살던 내 나라의 뚜렷한 사계절이 있어 적응하기 쉬웠던 것 같다.
음력으로 절기의 시작은 아마도 동지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동지가 가까워 오면 어둠의 끝판왕이라고도 하는 칠흙같은 어둠이 오후 두세시만 되어도 캄캄한 밤이 되어 버리고 내가 살던 고향동네와는 달리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그 절정의 날이 동지라면 그날 이후로 하루에 1분 정도 낮시간이 길어지고 어둔 밤이 짧아져 간다는 희망이 참으로 크게 기대에 부응이 된다. 2월이 되면 추위는 아직 냉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더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땅밑에서 아무 기척도 없이 살아 있다가 빼꼼이 얼굴을 내미는 콜코스가 새색시처럼 수줍게 인사를 한다. 자신을 지키고 살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단도리를 하는 것이 겨우내 추위가 무서워서 가지에 물기가 있으면 얼어버릴까봐 뿌리에 머금고 있다가 동장군이 떠나가는 낌새가 느껴지면 가지위로 물을 빨아올려 잎새의 씨가 싹을 틔우고 잎이 피면 곧 꽃이 핀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하고 경이로운 일인가? 이때의 연두색 잎새는 꽃보다 더 예쁘기도 하고 모든 식물에는 꽃이 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열매 또한 맺으며 어떤 식물에도 꽃이 피지 않는 일은 없다는 것을…

요즘은 벚꽃의 꽃망울이 터져서 만개하여 바람에 날리는 꽃잎이 바람결에 날리고 아직도 쏴 한 찬바람이 얼굴을 감싸 안기도 하지만 그런 바람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세상 어느 곳이든 봄은 새로운 도약이고 희망인 것 같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감각으로 때를 알기도 하고 느껴지기도 하는 일이 잎이 필때면 민들레의 보드러운 이파리와 뿌리로 식탁에 김치로, 나물로 또 부침개로 올려지고 뿌리는 깨끗하게 씻어서 창가에서 말려 ‘차’로도 끓여 마시기도 한다. 그런 즈음 4월의 문턱에 서면 고사리가 하룻밤 사이에 비가 오고 햇볕이 쨍쨍하면 쑤욱 올라와서 인사를 하고 있다. 고사리 따는 재미는 딸기나무의 가시에 찔리고 이끼 낀 나무와 돌에 미끄러질때도 있지만 하나씩 똑똑 끊어지는 재미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냐마는 어릴적 내가 태어난 50년대 후반 60년대 초반의 우리네 열악한 생활환경이였다. 쌀 한줌 보리 한줌이 귀하고 목구멍에 밥 들어가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 큰 일 이었을 때에 겨울이 지나고 가을에 파종한 보리가 파릇파릇 올라 오면서 오월에 타작하여 수확하기전까지 보릿고개라는 시기가 있었다.지난해 농사지어 수확한 쌀은 떨어진지 오래 되었고 보리쌀도 떨어져 감자나 고구마로 끼니를 이어 가다가 그것 마져 떨어지면 쌀이나 보리쌀 한줌 넣고 씨래기나 나물을 넣어 멀건 죽을 끓여 먹던 때가 있었다. 그때에는 산과들에 파릇파릇 올라오는 쑥이나 냉이, 산나물이 허기를 면하게 해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것 같다. 그 시절, 적지도 않은 새끼들 입에 밥 들어가는 일로 고생하셨던 어머니들의 한숨이 아련히 가슴을 적셔온다.

3월이 되면 제일 먼저 개울에 얼음이 녹으면서 개울가 가장자리에 매달려 버들강아지를 뜯어먹고 산에는 진달래가 온 산을 붉게 물들이면 치마에다 꽃잎을 따서 안고 오고 실컷 먹기도 했다. 찔레라는 것도 새순이 올라오면 따서 먹기도 했으며 소나무 송곳을 솔잎을 제거하고 껍질도 벗기면 안에 시원하고 달콤한 물을 하모니카 불듯이 하면서 먹기도 했다. 그때의 시원하고 달콤한 그 맛은 어느 청량음료보다 낫다. 사월이 되면 아직 쌀쌀한 날씨임에도 뒷산 대나무 밭에 소쿠리 들고 올케 언니랑 거름도 하나 주지 않았는데도 실하게 자란 참나물을 뜯어다 끓는 물에 데쳐서 된장에 참기름 한방울 떨어뜨려 무쳐서 양푼에 비비면 하얀 쌀밥이 아니더라도 꿀맛이었다.

오늘도 이곳 캐나다의 산길을 걸으면서 내 고향의 봄이 오는 소리에 안부를 묻는다.
봄아 !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소리, 나물 먹고 물 마시는 맛의 소리를 내 고향에서도 듣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