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Guy Black의 가평전투 승전기념 300km걷기와 관련해

 

우리 일행 세 사람 (서정길 부회장, 장민우 간사와 필자) 은 4월 6일 11시30분 토피노에 가기 위해 호국회관을 나섰다. 다음 날 11시에 있을 특별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 행사는 규모는 작지만 역사적이고 애국적인 행사임으로 코로나로 인해 여러가지 제약이 있음에도 강행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KVA의 명예회원인 Mr. Guy Black의 가평전투 승전 70주년 기념 300km 걷기행사였다. 우리는 그의 출정에 격려와 감사를 표하기 위해 그곳에 가는 길이었다.
처음에 이 계획을 전해 듣고 놀랐지만 3월3일 우리 회관에서 가진 그와의 미팅에서 설명을 듣고 우리는 적극 돕기로 했다. 가이 블랙의 이 걷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토피노에서 출발하여 목적지 랭리 가평석 기념탑까지 300km를 10일간에 걷는다는 것은 강한 체력과 용기가 요구되며 그 보다도 높은 이상, 애국심 같은 것이 작동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밴쿠버 섬의 기후는 변화기 심하고 비도 많이 내리며 도로상태도 별로 좋은 편이 아니다. 그는 또 57세의 중년의 사나이다. 그러나 그간 우리가 보아온 가이 불랙은 능히 이 일을 해낼것으로 믿음이 갔다.
우리는 장민우 간사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싣고 투왓산으로 향했다. 그의 운전솜씨는 장거리 운행에 손색이 없어 보였다. 1년에 5만km를 뛰고 있다니 그럴만 했다. 이번 두 행사도 그가 계획하고 준비하고 진행을 맡아 활동했다
이날은 아주 이상적인 날씨였다. 10도의 기온에 구름 한점 없는 하늘과 잔잔한 바다길은 훼리여행 에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가이 불랙이 걷는 동안 이렇게 화창한 날씨가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배 안에서 서부회장이 집에서 만들어 온 김밥과 과일을 먹으며 오랫만에 여행기분에 쌓였다. 배안은 승객이 적어 마치 전세 낸 배를 탄 것 같았다.
배는 2시간만에 나나이모에 도착했다. 우리는 자동차에 몸을 실고 서쪽으로 달렸다. 도로는 한산했다. 알바니를 지나고 나서는 길이 꼬부꼬불 S자 모양으로 생겨 오르막 내리막도 심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차를 타고도 힘든데 이 길을 걸어서 간다니! “하나님, 앞으로 10일간 좋은 날씨를 주십시요” 나는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내가 좋아하는 복음성가를 불렀다. “낮엔 해쳐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듯이….” 잔잔한 파도가 내 가슴을 스치는 듯했다. 그래 가이블랙, 그대는 해처럼 달처럼 그렇게 살고 싶은가 보다.
갈수록 주변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길 양편에 솟아오른 높은 산 위에는 횐 눈이 덮혔고 아래쪽에는 별로 크지 않은 나무들이 무성했으며 길 바로 옆에는 험하게 생긴 바위들이 위협적으로 솟아 있었다. 그러다 시야가 넓아지면 그곳은 바로 강같이 넓은 호수였다. 그것들은 이 나라의 아름다움과 부를 상징하는 풍경들이었다. 바로 하늘이 주신 땅, 우리들의 제 2의 조국 캐나다 땅의 모습인 것이다.
3시간 정도 달렸을 때 우리는 토피노에 들어가 있었다. 왼편에 아름다운 태평양의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써핑장으로 유명한 해안이었다. 우리는 숙소에 가기전에 내일 있을 행사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Radar Hill! 내가 20년만에 와보는 곳, 그때 가평전투기념비 건립 3주년때 재향군인회 회장으로 행사에 참석했었다. 기념비는 여전히 옛모습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나는 거수경례로 감동과 존경을 표했다. 1951년 4월21일부터 3일간 전개된 캐나다군의 가평전투 승리는 중공군의 수도서울진격을 막아 전새를 역전시킨 대작전이었다. 전몰용사 10명의 명복을 빌었다. 이를 기념하여 내일부터 가이블랙의 10일간의 대장정이 펼쳐지는 것이다.
저녁 7시 우리는 Schooner Motel에서 여장을 풀었다. 우리가 이곳에 숙소를 정한 것은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이승근 사장은 바로 밴쿠버에서 가야금 연주자로 명성이 있는 이종은 교수의 부친이셨다. 그는 우리들에게 분에 넘치는 대접을 해 주었다. 이번 행사의 취지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 뿐만 아니라 4월행사차 찾아오는 캐나다 참전용사들에게는 숙박비를 안 받는다고 했다. 우리에게 후원금도 보태 주었다. 그의 애국심에 경의를 표하며 이 지면을 통하여 이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침 6시, 나는 눈을 뜨자마자 밖을 내다봤다. 맙소사!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바람도 거셌다. 오늘 11시 출범식 행사에서 비를 맞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이런 기상에서 출발을 해야하는 가이블랙을 생각하니 실망이 컸다. 우리는 이 사장님이 손수 만들어 준 콩나물밥을 아침으로 먹고 Radar Hill로 행했다. 15분전 11시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곧 이어 가이 블랙이 아들 Sean Black(20)과 함께 도착했다. 노란 상의에 까만 반바지 차림이 무척 경쾌해 보였다. 전혀 날씨를 걱정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 아들은 아버지가 걷는 기간 중 밴을 몰고 뒤따르며 아버지를 돕게 된다. 특히 그는 운전 뿐 아니라 응급처치 자격증의 소지자로 아버지의 의료지원팀장이기도 했다. 조금 늦게 또 한사람이 도착했다. 가평전투에서 싸웠던 PPCLI(캐나다 경보병대대)에서 복무하고 제대한 K. Jednorog였다. 그는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4시간을 운전해 왔던 것이다. 다행히 비가 차츰 약해지고 구름이 걷혀가고 있었다.
11시 우리는 장민우 간사의 사회로 출범식을 가졌다. 먼저 가이 블랙과 나는 기념비 앞에 화환을 놓고 거수경례로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격려사로 10일간의 장도에 오르는 가이블랙에게 감사와 함께 성공을 빈다고 했다. 인사말 끝에 기도를 드렸다. “오, 하나님, 가이블랙에게 힘을 주시고 좋은 날씨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김성기 가평군수의 축전은 장민우 간사가 대독했다. 가이 블랙의 용기와 애국심에 감사를 표했다. 가이 불랙은 답사에서 격려해 주시는 모든분들께 감사 드리며 10일간의 걷기에 완주하겠다고 굳은 의지를 표했다. 믿음직한 그의 모습에 우리도 힘이 솟았다.
기념촬영 후 가이 불랙은 드디어 10일간의 토피노에서 랭리에 이르는 300km걷기의 대장정에 올랐다. 출발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동행한 서정길 부회장은 눈시울을 붉혔다. 가이 블랙의 용기와 한국사랑에 가슴이 뜨거웠다고 술희했다. 우리는 16일 랭리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후기 : 가이블랙은 4월16일 11시 랭리 가평석 기념탑에 예정대로 무사히 도착하여 가평전투 승전 70주년기념행사에 우리와 함께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