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란 두 사람이 모여 한 마음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또는 마음의 안식처, 쉼터 라고도 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친구에 대한 미담은 많이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친구가 되어주기는 쉽지 않은 듯 하다. 친구도 결국은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그 관계맺기에서 어느 한쪽이 친구가 되고 싶은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그 간절함은 진심으로 응답하는 도움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제 지구촌은 코비드 이전과 이후의 생활 패턴이 많이 달라졌다. 가까이 살던 이웃이 먼 곳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져 지척이 천리라는 말을 하게 되고 오히려 오랫동안 연락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디지털의 혜택을 받아 연결이 되어 소통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했듯이 친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여의치 않다. 어떤 새로운 일들에 길들여지고 있는 마음이 든다. 어떤 통로라고 만든 것이 사람이 친구가 되기 보다는 기계가 친구가 되어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기계의 역할이 못내 아쉬움을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 나를 가장 잘 알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친구로 만든다면 적어도 기계보다는 낫지 않을까? 내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는 일이다. 친구가 되기 위한 몇가지 필요충족의 조건이 있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알았을 때 이해해 줄 수 있고 감싸 안을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남남이 만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상대를 곱게 봐주지 못하는 일은 자신을 보듬어 주지 못하는 데서 시작될 때가 대부분의 경우이다.그럼에 있어서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이라면 자신과의 화해이다. 언제 우리가 이 일을 해 보겠는가? 그동안 살면서 흔히들 경험 해 오던 일이겠지만 누군가를 미워할 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화살촉은 나를 향하고 있다. 자신과의 화해는 자신을 먼저 돌보는 일이다. 그 돌봄이란것은 지금 나의 마음밭이 어느 누구의 집 문고리를 잡고 있는지를 알고 내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이다. 그렇게되면 자신이 하는 일에 점수를 좀 후하게 줄 수 있고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이것을 자존감이라고도 한다.
또 다른 일로서 내가 나의 친구가 된다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해야하는 일들이 지루 하기만 하고 마지못해 하기보다는 칭찬받고 인정받는 일로 전환될 수 있다. 그런데 자신과의 친구되기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과한 기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아줄수 없기 때문이다. 그 기대는 왠만한 저항에는 굽힐 줄 모르는 욕심으로 번져 나가기에 모든 일을 잘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그러기에 욕심으로는 친구가 되어질 수 없다. 우리는 대부분의 일을 잘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다만 자기자신이 만족하지 못할뿐이다. 그렇게되면 너무 높은 목표를 정해 놓을 수 밖에 없고 그거라도 움켜잡고 있어야 살수 있다고 착각하기에 친구맺기가 쉽지않다. 그런 삶의 연속은 목마르고 궁핍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경우 크나큰 실수 하나를 더 보탠다. 그 일은 자신을 나무라고 핀잔 주고 불평하는 일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보다 더 나를 볶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불행하다,고통스럽다, 힘들다’ 하는 이 모든 일들은 ‘나’로 인하여 생긴 일이고 그 출발점도
‘나’이다.
집에서 키우는 개도 주인이 미워하고 때리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예사로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고 툭툭 발길질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누가 나를 보아주고 다독거려 주기를 바라고만 있을 것이 아니고 내가 그렇게 한다면 이 보다 더 편한 친구가 어디 있으랴.
또 자신을 곱게 보아줄때는 누구를 만나도 경쟁의 관계보다는 상대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수 있다. 그럼으로 인하여 두려움이 없고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라도 회피하지 않고 현실의 상황에 맞추어 한가지씩 처리해 나가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나의 친구가 되어준다면 또 다른 친구가 생기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것은 이미 자신을 속이지 않는 ‘정직함’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직함은 내가 왜 친구가 필요한지 어떤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은지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먼저 손 내밀어도 괜찮다. ‘난 당신이 좋아요, 친구되고 싶어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