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배(캐나다 한인 늘푸른 장년회 회장)

나는 박물관 구경을 좋아한다. 그깟 골동품들 봐서 뭐해? 하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깟 골동품들을 보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한 7여년간 한국의 문예지인 ‘수필시대’에 기행 수필을 연재한 적이 있는데 밴쿠버를 비롯하여 여러 지역의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여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였지만 차츰 연재를 거듭할수록 나보다 앞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옛 사람들의 흔적을 현 시점에서 내 나름대로 바라본 소견이 혹 내 뒤이어 살아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약간의 사명감도 생겼다.

해서 내가 방문하고자 하는 지역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때 마다 재미와 감동을 느끼곤 했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 길을 막았다. 여행을 다닐 수 없던 약 2년간 기행 수필 집필을 중단해 버리니, 열정이 식어버렸다.

대신 내가 눈 돌린 것은 밴쿠버에 온 사람들의 옛 이야기였다. 같은 동아시아권인 중국과 일본은 한국이민자보다 먼저 밴쿠버에 왔기 때문에 이야기거리도 많았다. 중국은 밴쿠버 차이나타운에서, 일본은 리치먼드 스티브스톤과 버나비 니케이센터에서 남겨진 사진들을 보면서 대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연 한국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최초의 밴쿠버 한국인 거주자는 누구였을까? 본격적으로 이민오기 시작한 것은 언제 였을까? 그들은 처음 와서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그 당시 한인사회의 상황을 어땠을까?

한 번 호기심이 발동하자 성격상 그냥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주로 인터넷을 통해 밴쿠버 한인 이주 역사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생각만큼 자료가 많지 않았다. 다만 인터넷 위키피디아 기록상으로는 1953년 밴쿠버 UBC대학에 유학 후 1955년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임학교수가 캐나다 첫 유학생으로 밴쿠버 최초의 한인 거주자로 추측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잘 알 수 없어서, 내가 임의로 밴쿠버 한인 이민사의 출발점을 1953년으로 어림잡았다. 추후 더 일찍 밴쿠버에 온 한인(일시방문이 아닌 영구 거주자)이 있었다면 이 기준을 수정할 것이다.

아무튼 그러고보니 2023년이 한인 이민사 70년이 되는 해로 간주되는데, 우리도 이제는 우리 선배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 후손들에게 넘겨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일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이 작업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한 누군가가 대를 이어 지속해야 한다. 어지간한 은근과 끈기가 없으면 애초 시작만 하고 그칠 공산이 크다.

그래서 내가 운영하는 비영리사단법인 캐나다 한인 늘푸른 장년회의 인터넷 카페에 ‘한인 영상 이민사 박물관’이라는 메뉴를 만들고 우선 내가 소장했던 사진 또는 동영상 등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민신문에 ‘밴쿠버 한인 이민사 70년 영상자료 기증 안내’라는 광고를 내고 오랜 이민자들이 소장하고 있을 각종 사진과 동영상을 구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물론 유형의 자료들도 제법 있을 것이나 보관할 장소가 없기 때문에 우선 영상자료를 기증받아 카페에 보관하는 것부터 시작한 것이다.

일본역사에서 예를 듦이 좀 무엇 하지만 18세기 에도막부 시절에 시골동네인 요네자와 번에 제 9대 영주로 부임한 우에스기 요잔의 사례를 들어 보려고 한다. 잦은 내전으로 피폐해진 마을은 먹을 것이 없어 자식까지 잡아먹는 비참한 상황이었다.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찢어지게 가난한 영지. 부임하고서도 우에스기는 한참 실망과 좌절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화로에서 아주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했다. 거기 인화물질을 넣으니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불씨만 있으면 불을 피울 수 있는 거야.

내가 영상자료 수집을 시작했을 때도 우에스기와 같은 심정이었다. 우선 내가 불씨가 되자. 인화물질을 모으는 것은 천천히 생각하자. 그나마 지금 옛 자료를 보존하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은, 만약 한인 이민사에 관심이 생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도대체 옛날 분들은 무엇을 한 거야? 이런 자료 하나 제대로 챙기지 않았으니. 창피한 노릇이다. 다른 민족에 비해 보면.

그러나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고 했던가. 덕은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하는 일에 찬성하고, 협조하고, 격려하고, 도와주고, 스스로 자료기증의 의사를 밝히는 분들이 하나 둘 씩 생겨나기 시작한다.

밴쿠버 한인 이민사자료를 영상으로 나마 남기는 일. 이것은 절대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데 왜 니가 나서서 하느냐”면서 공을 다툴 일도 아니다. 다 함께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다만 불씨의 역할만 하려 한다. 마침내 불을 키워 온 방안을, 온 세상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 역사는 시작되었다. 나는 다만 뜻을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내게 향하는 발자국소리에 고즈넉이 귀 기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