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배 늘푸른 장년회 회장

국어 사전에 보면 ‘어른’이란 ‘다 자란 사람’, 또는 ‘지위나 나이, 항렬이 자기보다 높은 사람’으로 되어 있다. ‘어르신’은 어른의 높임말이다. ‘성인(成人)’이란 말도 있는 데 이는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으로 사전에 표현되어 있다. 그냥 몸만 자란 사람으로 참 어른과는 약간 괴리가 있는 말이다.

흔히 서너 살 가량의 어린 아이들이 “내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아빠 또는 엄마와 결혼할 거야”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온 우주인 아빠 또는 엄마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리라. 이는 어릴 때 부터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이들 이야기다. 부모가 매일 미워하고, 욕하고, 헐뜯고. 싸우고, 육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뜻도 모르면서 심하면 “내가 어른이 되면 아빠를 또는 엄마를 내다 버릴 거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부모는 부모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고, 심지어 어른이라고 할 수 없다. 어른이란 신체적으로 ‘다 자란 사람’을 칭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자라 있어야 한다. ‘나만 귀하고, 남에게 손해 끼쳐도 되지만 나는 손해보면 안되고, 내 말은 옳고 남의 말은 틀리다’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 인 인간을 어찌 어른이라 할 수 있는 가.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자신의 행실을 바로 하고, 남에게 모범이 되며,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다.

충북 음성에 오웅진 신부가 나환자를 위해 개척한 ‘음성 꽃동네’라는 마을이 있다. 일제 강점기때 강제 징용되어 병자로 돌아온 최귀동 노인이 자신도 불편하면서 동냥해온 음식을 거지 움막의 장애인들에게 나눠주는 광경을 목격한 오 신부가 세웠다.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문구가 꽃동네 대표 좌우명이다. 최귀동노인이 오신부에게 했던 말이라고도 한다. 1978년 내가 중소기업은행 초임대리로 대구에 부임했을 때 고객 중 한 명이 꽃동네 후원회원 가입을 권유했는데, 매달 일정액을 봉급에서 공제해서 후원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밴쿠버에서 제법 오래 살다 보니 참 어른과 몸만 커진 어린아이가 눈에 보인다. 부모가 자식을 성장시키기 위해 온갖 사랑과 정성을 다 하듯이, 교민사회의 어른은 자라나는 차세대를 한인사회 뿐 아니라 캐나다 주류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견인하는 역군으로 키워 나갈 책임이 있다. 부모의 미움과 폭력에 시달리던 어린이가 자라서 사회를 망가뜨리는 범죄자가 되듯이, 무관심은 대대로 전승되어 마침내 교민사회는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하고,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아무리 한국이 경제대국 10위권에 오르면 무엇 하는 가. 서로 단결하지 못하고, 참여하지는 않으면 밴쿠버의 한인은 모국의 영광과 명예와는 달리 뒷구석에서 험담만 하는 3류 민족으로 전락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40대 초반의 최병하(영어명 폴 최)씨가 버나비 남부 메트로타운 지역에 BC 주의원으로 출마하게 된다. 인구 8만명의 밴쿠버 한인사회에서 겨우 한 명이 주의원에 출마하지만 당선 가능성이 제법 높아 우리도 드디어 주의원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인구 3만명의 대만계는 서로 똘똘 뭉쳐 이미 여러 명의 정치인을 배출했고, 해마다 크게 타이완 축제도 하고, 문화회관 건설계획도 하면서 주류사회의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런 반면 60여년전 초창기 이민선배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룩한 한인사회와 한인회관 건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폐가수준으로 방치되어 있는 데도 잘 먹고 잘살기에 바쁜 우리 교민님(?)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좀 도와주자고 하면 생전 한인회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만날 싸움질이나 하는 한인회에 무슨 도움을 줘?’한다. 싸움질하던 옛 사람들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현재 한인회장도 역시 40대 초반인 강영구씨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임기까지 한인회를 정상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최병하씨는 당선만 되면 주정부 장관도 할 수 있고, 그의 법조인으로서의 경력과 실력으로 언젠가는 주 수상도 될 수 있다. 조금만 젊은 한인회장에게 힘을 보태면 우리도 일본이나 중국회관 못지 않은 버젓한 한인회관 건물을 가질 수 있다. 못 하란 법 없다. 우리 ‘어른’들이 정말로 마음먹고 잘 후원만 한다면. 그러니 어른 들이여. 죽으면 썩을 몸과 써보지도 못할 재물을 이들 꿈나무를 위해 좀 투자할 수 없을 까?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돌이켜 생각하면 그 때 우리 어르신들은 참 아름다웠더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참으로 걸어가야 할 ‘어른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