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사월이 간다. 2020년의 4월은 정말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강물처럼 이 순간이 흘러갈 것이다. 아침 일찍 코스코 쇼핑을 위해 길을 나섰다. 시니어 쇼핑시간에도 줄이 얼마나긴지.
코스코 정말 가고 싶지 않다.
내 돈 내고 쇼핑하는 것을 요즘처럼 구박받고 핍박 받으며 쇼핑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사진도 찍지 말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직원.
우리앞엔 중국여자가 자리잡고 남자는 카터 끌고와서는 슬쩍 앞에 다. 주차장 3분1을 줄 서는 곳으로 줄쳐 놓아서 주차장이 부족해 기다리는 차들이 명절기분이 든다. 명절땐 약간의 흥분이라도 있지만 이건 그냥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과 차들만 보인다.
코스코 안에서 쇼핑을 하는데 카터로 엉덩이를 툭치고 지나가면서도 아무런 말도 없다. 나도 악다구니 내서 싸워봐야 요즘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도 심하고 하니 그냥 넘어가자 하면서도 속에선 열불이 난다. 어딜가나 줄을 선다. 쇼핑을 하기 위해 다른 한국마켓이나 중국마켓에 가도 대부분 줄을 선다. 평소 같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하지만 꾸역꾸역 참는다. 참는게 지나치면 목젖을 타고 올라온다.
배가 부르다는데도 저녁을 먹었다는데도 계속 먹으라고 권해서 억지로 먹은 저녁처럼 화가 가슴에 차오르면 신물이 오르고 뒷통수를 타고 올라 머리에서 쏴하는 바람을 불러온다.
이순간이 가장 두려운 순간이다. 이미 한번 뇌경색을 당해봤기 때문에 절대 이 상황까지 가지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코비드19라는 상황이 집에만 있으라고 그게 미덕인양 세뇌교육을 시키다보니 이젠 그게 당연하다고 느끼면서도 은행직원이 난데없이 나타나서 따따다 영어로 질문을 해대면 준비하지 않은 권투선수처럼 갑자기 어퍼컷 한데를 맞은 것만 같다.
이미 밖에서 줄 서는 것에 지친 영혼에게 공격을 하듯 질문을 쏟아붓고는 왜 ATM머신을 쓰지 않느냐고 따지듯 묻는다. 우리가 다 ATM 머신을 사용하고 온라인 뱅킹을 하면 너네 잡이 없어지는데 하고 한마디 해주려고 하는 것은 생각일 뿐 속으로 소 되쇄김처럼 혼자만 풀씹듯이 되뇌인다.

날이 좋으니 날씨 탓도 못하겠고 비가 와서 우울하단 말도 못하겠지만 왠지 모를 답답함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 보아도 가시질 않는다. 잘 있냐고 지인들 연락처도 눌러보고 절반의 성공처럼 몇몇은 연락이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대부분이 같은 처지라 그저 동병상련, 말 안해도 아는 똑같은 어려움… 언제까지 이 상황이 지속될지 아무도 알 수 없고 수화기 너머로 서로의 안부를 빌어 줄 뿐이다.
정부에서 주는 비상 지원금을 아무것도 해당이 안되어 받을 수 없는데 캐나다 온지도 얼마 안되고 일한지도 한 달 좀 넘은 사람이 비상실업수당을 3000불이나 받았다고 자랑했다고 그러던데 하고 밥먹을 때 딸한테 말하니 남들이 어쩌건 신경쓰지 말란다. 옆지기가 나도 신청할까 일 못해서 자격이 안 되는데…
받기야 하겠지만 나중에 벌금까지 더해서 토해내지 말고하지 말라며 나한테 화나는 이야기하지 말란다. 따님께서 열 받는다고.
가족 중에 오직 한사람.
일하고 있는 사람이 딸이다. 딸이 일하는 시간엔 온 가족이 숨소리조차 죽여야한다. 재택근무가 좋긴 하지만 이럴 땐 안 좋은 것 같다. 정부에서 주는 비상실업수당도 렌트비 보조도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으니 상대적 박탈감이 온다.
캐나다가 돈이 많아서 주는 지원금들이 아니고 결국 모든 것이 캐나다 사람들이 갚아야 할 돈인데 일부 사람들은 일단 받고 한국으로 가버리면 된다는 사람도 있다.
다시는 캐나다에 아니 미국까지도 다시는 오지 못할 수도 있는 경우다. 캐나다 국세청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7년된 세금 탈루도 찾아서 받아내는 부서가 있다. 그리고 캐나다 국경수비대와 연계되어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돨 수도 있다.
신청시에 거듭 확인해서 질문하는 의도가 무자격자를 걸러내기 위함인데 일단 받고 보자라고 생각하면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남들이 자격이 안 되는데 받았다고 하면 나도 해볼까하는 유혹이 불끈 일어나기도 한다.
일하다 코비드19때문에 직장을 잃은 두 사람만 있어도 그 가족은 4000불을 받게 된다.
일하는 것보다 많은 수입인 사람도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받고 알바하는 것보단 비상실업수당 받는게 나을 수도 있는 현실이 됐다.
맥카페 같은 곳에서 알바를 하던 젊은 친구들은 비상사태실업수당이 일할 때보다 많으니 일하지 않아서 좋고 돈 더 받아서 좋다는데 1000불이 안 되는 일하는 사람도 비상사태실업수당을 신청할 수 있단다.
난 그런 2000불에 맞추어 주나 싶어 딸에게 물어보니 그 사람들도 2000불씩 준단다. 그래서 내가 그럼 1100불 버는 사람은 수당신청을 못해서 그것밖에 못 받잖아.
그렇단다
불공평해.
900불 번 사람은 비상사태 실업수당 받아서 2900불이 되는거잖아.
그렇단다. 세상에이런불공평한일이.
필수직종에 일하는 사람들은 봉사로 일을 하지 않는데도 봉사하는 사람들처럼 퉁명스러울 때가 있다. 다들 놀면서 수당을 받는데 자기들만 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가보다, 하지만 사실 실직을 해서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들도 일을 하고 싶어서 일을 못할 뿐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