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1월 13일 맑음

 

어디에 박혀 있었는지 모르지만 40여년이 지난 고등학교때 일기와 시라고 쓴 글들이 든 노트가 아내의 손에 의해 나왔다. 그 중에 하나 짝사랑이란 이름을 붙인 까마귀 때문이라는 날.
비만 오던 날씨때문에 신발이 온통 흙투성이더니 오늘은 날씨가 맑아 그래도 좋은 것 같았지만 하루 일과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아침에 처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제천중학교 앞에서 다 내린 뒤에 커피빛 바바리 코트를 입은 박 선생님이 보였다. 왠지 요즘에는 볼수록 미워만 지는 얼굴이다. 조금 안다고해서 그런지 확실한 계산이 없어서 불만감이 고조되고 날 따돌리고 시화전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던 일들. 그래서 나는 선생님과 같이 가지 않기로 하고 시청 앞까지 올라 갔다. 요즘에는 내가 그렇게 느껴서 그런지 민 선생님과 박 선생님이 자주 비교되곤 한다. 왠지 자꾸만 끌리는 민선생님, 모두 다 떨어 내고 싶은 박선생님.
아침 주번조회는 물론 참석치 못하였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상우가 대신 청소를 해 놓았다. 칠판을 지우고 지우개를 털 때 민선생님이 오셨다. 인사를 하니 약간 미소 지으며 답례를 하신다. 아침 조회 시간에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최00와 조00이 요즘 무기정학을 받고 있는데 어제 저녁에 술을 먹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먹었으면 선생님께 보고가 들어왔을까?
선생님은 눈물이 핑 돌아서는 한 번도 아니하시던 “죽인다. 학교 못 다닐 줄 알아”를 연발하셨다. 지금까지 그렇게 흥분하신 담임선생님을 뵌 적이 없다. 어제 학급일지 철할 때만 해도 입에 사탕을 까서 넣어 주시던 자상하신 선생님이었다. 난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려해도 그렇게 잘 되질 않는다. 아침에 까마귀 탓으로 모든 걸 돌리는 수 밖에 없다. 오후에 올 때는 또 조금 일찍 오려다 교실 앞에 깔아 놓은 자갈에 넘어졌다. 다행히 여학생들이 본 것 같지 않아 얼른 일어났지만 가방에 실내화가 삐져 나오고 옷에는 흙이 부옇게 묻었다. 난 수돗가에 가서 대충 물로 닦고 다시 빨리 걸음을 재촉했다.
새로 짓는 봉양중학교 들어 가는 입구 쯤에 왔을 때 이00이 몇명의 여학생과 가고 있는게 보였다. 난 아는 체 하기가 뭣해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00이는 한글 백일장때 언니와 어디 간다고 인사하고 부터 잘 아는 여학생이다. 그리고 00이는 볼때마다 민망스러울 정도로 고개 숙여 인사를 해서 귀엽고 깜찍한 여학생이란 인상을 가졌었다. 그런데 지나치려는 나를 00이가 불러 세웠다.
“오빠. 잘 가란 말도 안 해요. 항상 내가 먼저 인사해야지 하고…” 난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엉거주춤 서서 “미안해…(우물우물)”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다시 빨리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00이가 불러 세운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혹 00이가 날 좋아 할런지도 모른다면서.
3학년초에 교통 설 때부터 인사해온 00이가 또 다시 내가 생각하는 계기를 갖게 했다. 직행을 타려고 주포에 오니 병택이 동생이 정면에 서게 됐다. 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요즘 내가 말을 잃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00이도 뒤에 와서 섰다. 앞에 점덕이도 보였고 현숙이도 보였다. HS이 날 보고 얼른 고개를 돌렸다. 00이와 나는 같은 직행버스에 앉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 보였다. 내릴 때 잘가 라고 인사나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내릴 때 그 말을 하기가 쑥스러워 기회를 보다가 그냥 내려버렸다.  내려서도 기회를 보았으나 다른 여학생들도 있고 00이도 건널목으로 건너가 버려 그만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았다.
00이가 실망했을 것만 같다.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다. 다음에 만나면 꼭 말을 하리라 다짐해 보지만 기회만 보다 말 것만 같다. 모두 가 까마귀 탓이다. 누님이 내가 한 말에 눈물까지 흘렸다니 참 애석한 일이다. 이혼하고 집에 다시 와 있는 누님에게 그 말이 그렇게 언찮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오늘은 까마귀의 날이다. 까마귀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