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마지막 남은 달력이 힘겹운듯 매달려 있다. 갈때가 되면 가야한다지만 올해 송년은 어 벌써 송년이네하는 느낌이 더 강하다. 출퇴근길 역사에 걸린 크리스마스 장식이 아 크리스마스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물론 어김없이 찾아 오는 블랙후라이데이 세일이 연말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고 있기는 했었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지난해 뇌경색으로 쉬기 시작하고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할때쯤에 COVID-19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실업의 대열에 들어서면서 일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조리사는 많은 곳이 문을 닫았다. 대표적으로 카지노가 문을 닫고 아직까지 다시 열지 못하고 있고 경기장등에서 일하던 직원들과 많은 식당들이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덜받은 곳으로 몰려 들었고 그곳에서 구하는 직원은 대부분 정규직이 아닌 임시직으로 여전히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이 살아 가면서 전쟁이나 질병의 유행을 경험하게 될 확률은 어느 지역 어느 국가에 사느냐에 달리긴 했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국가에서는 그런일을 겪을 거라고 생각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지나 온 길을 따라가 보면 그곳에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 하나가 있다. 장작난로와 조개탄 난로위에 도시락을 줄줄이 올려 놓고 따스해 지기를 기다리거나 제일 밑에 넣어서 누룽지가 눌은 아이는 물을 부어 누룽지 탕을 만들어 먹었다. 그시절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고 이승복 어린이처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당연하게 외치면서 운동회에서 보재미 박터트리기를 하면서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대형 글자가 내려 오던 시절, 남진의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님과 함께 살고 시퍼를 어린 국민학생까지도 부르던 그 시절은 라시찬의 전우가 우리들에겐 지금의 K-POP 스타보다 더 멋진 한 번쯤은 꿈꿔보고 싶은 미래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김일선수의 박치기를 흉내내는 아이들이 유행처럼 박치기를 하고 역도산의 무용담에 너도 나도 꿈을 꾸던 무도인도 동네 어귀 놀이터에서 하는 태권도 수업에서 친구가 가장 중요한 쌀방울 두 쪽을 차여서 죽는다고 동네가 떠들썩할때 난 태권도 안배워서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었다.
장마에 물이 불어 저수지 물이 많이 나오면 굵은 챗바퀴들고 개울가서 개울가 풀숲을 발로 뒤져 중터리와 붕어를 잡으려 했지만 붕어는 간데 없고 개구리만 챗바퀴로 들어 오던 그 시절은 다시는 돌아 오지 않은 날들이 되어 버렸다. 이용이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 보자고 그래서 꿈을 꾸며 살아 가리라고 말했지만 좋아 하던 가수 장덕의 죽음과 어린 가슴에 상처. 조용필의 단발머리는 목소리가 안나와서 가성으로 따라 부르려 무진 애를 썼다. 고추잠자리, 창밖에 여자,
이주일과 배삼룡의 코메디에서 이주일씨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명언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는 고등학교 운동회에서 가장행렬을 했는데 아버지의 한복바지와 양복 윗도리를 입고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먼가를 보여 주며 살겠습니다라고 했서 학교학생 전체의 배꼽을 뺀적이 있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면서 80년대를 노래하던 그 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아파트 붐이 일던 그때부터 우린 높은 곳만 바라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송창식의 가나다라로 우린 다시 한글을 배우는 자세로 세상을 바라 봐야 했다. 시대적 아픔을 은유해서 노래한 듯한 유심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나는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다고 외로움을 노래한 유심초의 노래등 시대상황 따라 가요가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시어 주었다. 요즘 유행하는 팝송은 한국말로 노래를 해도 외국어 같아 당췌 무슨 말인지 모르니 춤을 잘추는구나 정도 감동밖에 못한다.
이선희의 J에게가 이니셜이 내이름의 약자라고 왜 우겼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다시 돌아 오지 못할 그날들과 그 사람들이 유행가 가사에 뭍어 나듯이 복원된 청계천에 사과나무를 심어 봤으면 한다.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 아파트 구조는 푸세식 변소가 있던 초가집보다는 편리하고 물을 물동이로 길어다 쓰지 않아도 되는데 편리한 만큼 행복한 느낌은 덜 한 것 같다. 외관적으론 정말 획일적인 아파트는 최악이다. 게다가 요즘 고층을 올리면서 답답함까지 더했다. 편리한 것에 익숙해서 외관이야 어떻든 상관없다지만 그래도 밖에서 보는 외관도 이뻤으면 싶다. 새해엔 전염병으로부터 탈출과 전쟁과 아품이 없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