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한 연구실, 식물학자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가 고치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나비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나비는 바늘구멍같이 작은 구멍을 뚫고 고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꼬박 한나절을 애쓰고 있었다. 나비의 입장에서 고치를 나오느냐 마느냐는 생사가 걸린 문제일 것이다. 인내심으로 고통을 이겨내고 고치를 뚫고 나온 나비는 활기찬 날갯짓을 하며 세상으로 날아갔다.
반면에 다른 나비들과 달리 고치를 쉽게 뚫지 못하는 나비도 있었는데 윌리스 박사는 이를 안쓰럽게 여긴 나머지 나비가 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고치의 옆 부분을 칼로 살짝 그어주었다고 한다. 나비는 박사의 도움을 받고 고치에서 빠져나왔지만, 혼자 힘으로 고치를 뚫고 나온 나비와는 달리 무늬나 빛깔이 곱지 않고 날갯짓에 힘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몇 번의 날갯짓을 시도한 나비는 끝내 죽고 말았다. 결국, 혼자 힘으로 오랜 고통과 인내가 뒤따라야만 진정한 나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고통과 인내가 따른다.
부모가 자식을, 스승이 제자를, 상사가 직원을 위하는 마음으로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하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에 손을 내미는 순간 그 목표는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진정 도와주고 싶다면 상대방을 격려해주고, 함께 인내해 주는것이 바림직한 것이 아닌가 생각 해 본다. 어쩜 이것은 당장의 안타까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중을 위한 진정한 도움이 되는 이유인 것 같다. ‘힘보다는 인내심으로 더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애드먼드 버크의 말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나비의 인내심을 들려주고 싶은 요즈음이다.

밴쿠버의 12월에는 각 학교에서 리포트 카드가 나오는 시기이다. 세컨더리 이상의 학생들은 점수 관리가 필요한 입장이지만, 초등학생 아이들의 평가는 담임선생님만의 주관적 견해가 적지 않기 때문에 상황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현지인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성적표에 나타나 있는 선생님들의 grade 표시는 대부분 유학생들의 부모님들에게는 민감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한국의 수, 우, 미,양,가에 길들여진 우리 기성 세대들이 아이들의 부모님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첫 유학 해에는 레벨을 인정받지 못하는 NY의 표시에 상처를 받고 낙담을 하기도 하였다. 고작 1년도 되지 않은 영어권의 실교육을 접하는 초보자의 교만함이었는지도 모르면서 그리하였던 것이다.

지금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받아온 성적표를 보며 선생님들이 표현하신 코멘트에 눈길을 돌리는 현명한 부모가 되고 있다. 참여도가 어떠하였는지 어느 부분을 더 보강해 주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살피고 있다. 또한, 현지 선생님들의 관대하지 않은 듯한…사실은 이유있는 판단을 신뢰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인정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이제 고작 5,6학년이 된 아이들에게 성적에 대한 압박감을 주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항상 고민이 된다.자녀를 성인으로 키운 입장에서 되돌아보면, 노력하는 모습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준 것이 지금의 아이가 있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큰 아아들은 시험을 보면서도 배운다고 표현을 한다. 배우고 익히는 자체에 열정을 쏟는 아이들을 보며,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며 잘 싸는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말 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그러면서도 에티켓을 아는 사람이면서 자신이 해야 할 공적(학교나 학원 교육)인 책임은 아는 어린이리면 최고 중의 최고 라고 들려주었고 지금의 어린 아이들에게도 표현하곤 한다. 그 뒤에 받는 성적은 너희들의 몫이 아니므로 그 사소한 것에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어린 학생들은 학교 가기를 싫어한 적도 없었고 과제를 안 하려고 꾀를 부리지도 않는 아이들이다. 유학 생활 2-3년은 성적에 대하여 스트레스를 받아보지 않았던 모습으로 그저 참여도에 칭찬을 받았고 단체 생활의 유연함에 희망을 보았던 것 같다. 지금 그 아이들은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잘 하며 하고 싶은지를 아는 대학생이 되어 삶을 전진하고 있다.
며칠 전, 한국의 기사를 보며 놀라움에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도 학생들을 지도하고 가르쳤던 나는 내 학생과 같은 반이었던 유명 연예인의 자녀에게 상담을 요청받은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가 상담요청을 하는 당찬 모습에 웃음을 지었던 그 때였다.
공부도 아주 잘했던 아이가 좋은 고등학교를 간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중도에 학습을 한 동안 놓았다는 소식은 의외였기 때문에 놀랐고 무엇 때문이었을지 염려되는 마음에 지나간 내 학생들이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는 시간이었다.

대한민국 청소년 교육이 흔들리고 있다는 건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뒤늦게 유학오는 학생들의 상당수가 학교를 결석하는 부분에 대하여 둔감한 편이다. 조금만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결석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건 나로서도 많이 당황하게 된다.
학습을 쉽게 내려 놓거나, 성실성, 책임감에 대하여 결여된 모습을 보이는 10대들을 보며 우리 모든 기성 세대들은 깊은 생각을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든 어리든 관계된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내 위치가 어떤 입장인지를 생각하여 책임을 다 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가정에서도 놓치는 이 당연함을 아이들에게는 첫 사회인 학교나 학원에서도 알려주지 못하는 분위기인 세상이 염려가 된다. 적어도 어린 초등학교 때만이라도 아이들을 한국식 교육 평가가 아닌, 제대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며 성장시킬 수 있는 부모님이기를 부탁하고 싶다.
캐나다라는 선진화된 교육을 받기 위해 머물고 있는 이 곳은 아이들이 자연을 즐길 줄 알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아는 깊이 있는 청소년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우리 어린 아이들을 안아 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