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배(시인, 수필가)

우연히 동포사회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우연히’라고 표현한 것은 초대받은 모임이 아니라 만나려는 사람이 그 모임에서 나를 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누굴 만나기 위해 갔는데 주최측이 덜컥 나를 초대손님 석에 앉혔다. 본의 아니게 귀빈(VIP)이 되었다.

오랜만에 동포사회 모임에 나갔으니 한동안 뵙지 못한 어르신들에게 인사라고 하려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A씨, B씨, 그리고 C씨— 차례대로 인사를 했더니 고작 서너 명이 끝이었다. 대신 그들과 한 테이블에 앉은 나보다 연하의 사람들이 일어서서 내게 반가운 인사를 했다. 꽤 되는 숫자였다.

15여년전, 내가 한인사회에 봉사하기 시작할 때는 어느 모임에서든지 인사하기 바빴다. 나는 50대 후반의 나이였고, 한인사회 주요 모임에 참석한 초대손님은 대부분 60,70대였다. 모국을 떠나 낯선 땅에 정착한 나로서는 그들이 형이고, 삼촌이고, 선배이고, 스승이었다. 그때 나는 캐나다 이주 6년차 정도 되었지만 아직도 서툴고 모르는 것이 많은 시절이었다. 캐나다에서 30년~40년을 산 원로인 그들은 살면서 나의 ‘시행착오’를 많이 줄여 주었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찬바람 불고, 무성하던 나뭇잎 낙엽으로 지듯이 내가 알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간다. 내 나이는 옛 원로들의 나이에 접근해 가니 당연하겠다. 단체장을 하면서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하던 사람들, 열심히 사업을 일구어 교민사회의 고용창출에 노력했던 사람들, 정치, 문화, 예술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며 한인의 위상을 주류사회에 떨치던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모함하고 음해하며 깎아 내리기에 열중하던 사람들조차, 이제는 모두 내 주변에서 사라져 가고, 싱싱한 초록의 나뭇잎들이 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그리고 서서히 낙엽이 되어 가는 나더러 어서 자리를 내어 놓으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나는 당신이 가는 길을 따라 가련다. 손에 손을 맞잡자.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그렇게 긴 것이 아니다. 얼마 후에는 <죽음>이라는 착한 유모가 찾아와서 우리를 모두 요람에서 잠들게 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남을 돕자.”

디자이너, 공예가, 시인으로 명성을 남긴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는 당대에는 시인으로 명성을 얻었고, 지금은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말에서 인간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충고한다. 더 늦기 전에, 이 세상에 남아있는 동안, 우리는 나를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사는 길을 가야 한다. 축적된 경륜과 지식으로, 살아갈 날이 아득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온 간난신고의 날들을 이야기하면서 따라오는 세대들이 시행착오를 덜 겪도록 해야 한다. 행복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데 있지 않다. 다 함께 잘 먹고 잘 살아야 더불어 행복하다.

“먼 옛날 어느 분이/내게 물려주듯이/지금 어드메쯤/아침을 몰고오는 어린분이 계시옵니다./그분을 위하여/묵은 의자를 비워드리겠읍니다.”(조병화 시 “의자”)

이 가을, 나는 그동안 굳게 자리 지키며 앉았던 의자에서 서서히 일어날 준비를 해야 하겠다. 그리고 묵은 의자에 앉아서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 나갈 사람들을 위해 내 가진 것 아낌없이 모두 전해야 하겠다. 알량한 지식과 재능이라 할 지라도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 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