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은숙 해오름학교 교장

2023 9 30 해오름의 추석 마당 맑은 하늘, 푸른 잔디 위에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가을 빛에 물든다. 농익은 청포도, 붉게 물든 무화과 나무 아래 해오름 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 과꽃 닮은 이야기꽃을 피운다. 오늘은 해오름 가족의 추석날이다. 모처럼 유아, 청소년, 성인 입양인이 함께 모였다. 입양인의 가족과 형제, 부모들이 모이니 대가족이다. 이제 차례상에 올릴 음식과 함께 나눌 음식을 만들 시간이다. 콩과 녹두 고물을 넣고 양 끝에 각을 잡아 꼭꼭 눌러 송편을 빚느랴 머리를 맞댄 양부모의 모습이 머리와 피부색은 달라도 천상 한국 아낙이다. 밀가루 옷을 입혀 노릇노릇하게 부친 호박전, 계란을 입힌 동태전과 배추 두 장을 얹어 부친 배추전이 완성됐다. 야무진 손 끝에 묻어나는 모성과 부성의 하모니가 가을 햇살만큼 빛나는 순간이다. 한 켠에는 모두가 좋아하는 불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간다.

청포도 넝쿨 아래에서는 밀떡에 오뎅을 넣고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간 고추장을 끼얹은 떡볶이가 아이들의 입맛을 돋군다. 이미 샐러드에 스테이크 먹고 파스타, 햄샌드위치 도시락에 익숙한 그 아이들이 아니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먹던, DNA속에 숨어 있던 입맛이 되살아나는 찰나, 햐!! 이 맛 정말 우리 맛이야!! 떡볶이를 맡은 제이슨과 폴의 환호성이 떡볶이에 날개를 단다. 마당 한 켠, 병풍 앞 차례상에는 사과, 배, 감과 밤, 대추가 나무 제기에 정성스레 올리고 삼색 나물과 함께 만든 전과 송편이 가지런히 올려졌다. 추석은 추수의 기쁨을 나누고 조상께 감사를 드리며 차례를 올리고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여 화목을 다지는 한국 고유 명절이다. 먼저 상 위에 신주를 모시고 향을 피우고 술을 올린다. 제주가 절을 하고 마지막에는 원하는 아이들이 나와 함께 절을 하고 지방을 태우는 의식을 마쳤다.

차례를 마치고 사물놀이와 택견의 순서는 물건너 갔다. 어린 동생들을 무등 태우고 업고 안고 어르는 청소년기의 형, 누나들의 웃음소리가 햇살을 가른다. 그 아이들의 웃음을 바라보는 오십이 된 멕케이의 눈가가 깊고 따뜻하다. ‘내가 어릴 때 이런 시간이 주어졌다면 내 삶은 180도 다른 삶이었을것 같다’는 멕케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잠시 흔들린다. 동행한 그의 아내가 그의 어깨를 토닥여 준다.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날고, 사루비아, 백일홍의 붉고 노란 입술마다 한국의 정이 넘실댄다. 드디어 점심을 나눌 시간이다. 1회용 종이 접시보다 식판을 준비했다.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고 맛이 섞이지 않고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먼저 식판에 밥, 폴과 제이슨이 만든 떡볶이를 담고 불고기와 잡채를 얹고 삼색나물과 전으로 추석의 멋과 맛을 담았다. 잡채에 떡볶이를 얹는 모습이라니.., 알려주지 않아도 아는 그 맛의 조화를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처음 참석한 한 부모는 무나물이 너무 맛있다고 만드는 법을 묻는다. 거기서 느껴지는 담백,깔끔하고 감치는 맛은 마치 한국의 이미지와 닮았다고 말한다. 해오름 가족이 맛 본 음식은 한국 식당에서 맛보던 대중적인 불고기, 잡채, 떡볶이가 아니다. 맛은 덜해도 한국 어머니의 손맛과 향, 그리고 사랑이 담긴 맛이다. 차례 음식이라 향식료가 배제된 소금과 참기름, 깨소금으로 맛을 낸 DNA가 기억하는 바로 그 맛이다. 또 그 안에 한국인의 정이 아로새겨있지 아니한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가 가장 먼저 동이 나고, 불고기, 잡채, 삼색나물 등 콘테이너가 바닥을 보인다. 해오름의 잔치에는 남는 음식이 없다. 아이들은 먹고 남은 음식을 작은 콘테이너에 담아 어머니의 정성 담긴 도시락처럼 소중하게 가져간다.

밴쿠버에는 유년기에서 청소년으로 성장한 해오름 그룹이 주축이 되어 근래 입양된 유년기, 이미 오십대에 접어든 성인입양인과 더불어, 함께 캐나다 속의 한국인 가족으로 살아간다. 어린 동생들을 어우르고 성인 입양인의 따스한 온기, 선배로서의 격려와 사랑에 힘입은 청소년기의 제이슨, 폴, 세라, 데이빗의 표정이 남다르다. 해오름은 건강한 입양가족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언어, 생활, 정신문화 활동을 통한 지지 프로그램 제공 및 문화교류의 일익을 담당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지도자로 발돋움을 목적으로 자원봉사자들의 인적, 물적 자원으로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로 시작되었다. 15년이 지나는 동안 단체의 의미보다 한국인 가족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제는 그 자리매김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지도자로의 발판을 다지기 위한 초석을 공고히 할 시간이다. 가을 햇살 고운 날,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해오름 추석 마당에 희고 노랗고 붉은 국화 향기가 뜰 안에 가득하다. 우리는 국화향을 닮은 캐나다 속의 한국 가족이다.

 

추석

햇살 물든 가을 들녘 걷어다가

팔월 한 가위라 밝은 달 아래

둥근 밥상에 도란도란

해를 닮은

달을 닮은

별을 닮은 송편을 빚는다.

 

불그러진 송이마다

꼭 붙어 앉은 저 밤송이처럼

둘러 앉은 정겨운 얼굴

해를 닮은

달을 닮은

별을 닮은 송편을 빚는다.

 

누이 얼굴 같은 해오름달

막내동이 삐죽이던 입술달

박꽃 하얀 어머니 웃음달

등 가죽만큼이나 닮아진 아버지 거뭇달

추석이라 한 가위

온 가족 둘러 앉아 보름달을 빚는다.

 

저마다 살아가는 동안

빚고 또 빚었을 송편,

익고 또 익히고 삭혔을

미운 정 고운정 모다 모아

웃음꽃 출렁이는 달빛 아래

빚은 송편마다 보름달이 만삭이다.

 

차례 상에 올린 나물 거둬

송편 마냥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모듬 나물밥 함께 나누게.

우리 언제 부모 형제 자매

아닌 적이 있던가……,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