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눈부신 설원이 강렬한 이미지로 마음에 남은 영화도 있고, 겨울의 추위를 배경 삼아 펼쳐지는 사랑이 더 애절해서 잊을 수 없는 영화도 있다. 모두 겨울의 하얀 이미지와 함께 어우러져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슬며시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다. 따듯한 추억이 되어 추위를 녹이고 지나간 날의 그리움을 불러온다. 그런데 몇 년 전 이 영화가 나오고 나서는 다른 영화를 제치고 겨울이면 가장 먼저 이 영화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바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다.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삽입곡인 ‘렛잇고우’를 들어봤거나 불러봤을 것이다. 여자아이들치고 한 번도 ‘레잇고우’를 부르지 않은 아이가 있을까. 일반인뿐 아니라 수많은 가수들 또한 각자의 개성대로 이 노래를 불러 화제를 모았다. 그야말로 전 세계를 휩쓴 이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영화 자체도 화제를 모았지만 삽입된 노래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장 많이 불리고 자주 들을 수 있는 노래는 ‘다 잊어’로 번역되는 ‘렛잇고우(Let It Go)’와 ‘눈사람 만들래?(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노래는 따로 있다. 작고 우스꽝스러운 모양의 눈사람 올라프가 행복한 표정으로 부르는 노래, ‘여름에(In Summer)’이다. 영화를 보다가 이 노래가 나오는 장면에서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가슴이 울컥하니 눈물이 났기 때문이다. 신나는 노래에 맞지 않는 내 반응이 우습기도 했다. 올라프가 신이 나서 부르는 노래의 내용은 어이없게도 여름에 대한 소망이다. 눈 덮인 단색조의 세상은 고요하지만 침울해서 싫다. 활기 넘치는 여름의 생명력과 알록달록 화려한 색채가 주는 즐거움이 너무나 좋단다. 올라프는 기대 한가득 담아 그 뜨거운 여름을 노래한다.
하지만 뜨거운 여름은 눈사람과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세계이다. 즉 올라프의 소망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인 것이다. 그런데도 올라프는 의심 한 방울 없이 즐거움과 희망에 찬 목소리로 여름을 노래한다. 눈사람은 여름을 알 수도 없다. 하루살이가 이틀이라는 개념을 알 수 없듯이 눈사람은 여름의 개념조차 가질 수 없다. 존재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개념조차 갖지 못한 세계를 꿈꾸는 것은 불가능하고 위험한 생각일 것이다. 어쩌면 좋을까. 옆에서 노래를 듣던 사람들은 눈사람의 불가능한 꿈이 난감하다. 냉정한 진실을 그에게 알려줘야 하나 혼란스럽다. 여름을 기다리는 눈사람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이 불가능하고 위험한 상상이 ‘울컥’을 일으킨 원인이다. 눈사람의 소망이지만 사실 인간의 역사도 이처럼 자신의 존재마저 위태로울 수 있는 상상으로부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이 위험에 대한 경계심마저 무디게 한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환상과 호기심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킨 요인이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터질 듯한 기대로 위험에 돌진하는 인간에게 불가능이란 말은 아주 사소한 장애 정도일 뿐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동력인 호기심과 상상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름을 상상하는 올라프의 기쁨에 넘친 표정이 상징하듯이.
결국 올라프는 꿈을 이뤘을까. 대답은 ‘예스’이다. 올라프의 상상이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는데, 여왕 엘사가 올라프 전용 눈구름을 만들어서 머리 위에 띄워주어 꿈을 이뤄준다. 춥고 삭막한 모노톤의 겨울에만 존재할 수 있었던 눈사람이 여름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올라프가 뜨거운 여름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나도 행복했다. 눈사람의 불가능한 꿈이 이뤄져서 존재의 형식과 정체성이 변했다. 새로운 존재 양식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계속 함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불가능에 도전해서 행복을 확장한 것이다. 여름을 즐기는 올라프의 행복한 표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나에게 남아있다. 가끔씩 올라프의 노래를 생각하며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인간의 상상력을 나도 소망해보곤 한다.
얼마 전 우주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가 보내온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태양계의 가장 바깥인 카이퍼벨트에 속한 천체인 울티마툴레의 사진이다. 두 개의 천체가 느린 속도로 충돌해 하나로 합쳐진 것으로 보이는 행성인데 그 모양이 마치 눈사람을 닮았다. 보는 순간 올라프 같다고 느꼈다. 합쳐진 두 개의 천체를 각각 울티마와 툴레로 명명했는데 라틴어로 ‘알려진 세계 너머’라는 뜻이다. 이 울티마툴레는 태양계가 처음 생성되었던 45억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우리에게 초기 태양계의 모습을 알려줄 단서가 될지 모른다고 한다. 명왕성 너머 태초를 간직한, ‘알려진 세계의 너머’를 담은 소행성이 올라프를 닮았다니 올라프의 불가능한 상상이 우리에게도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문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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