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결혼 27주년과 친정엄마의 79세 생신 기념으로 그라우스 마운튼 정상에서 모두가 함께한 저녁 식사. 비가 와서 구름이 뭉게뭉게 떠다니고, 안개가 자욱해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소화도 시킬 겸 빗속을 터벅터벅 걷다가 마치 횡재하듯 맞닥뜨린 사슴 가족들.
그리고 우리가 찾아간 그리즐리 베어 동물원에서 만난 Coola와 Grinder.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사고로 고아가 된 그리즐리 두 곰이 형제처럼 의지하며 자라고 지내는 곳. 이제 곧 동면에 들어갈 녀석들의 서로 다른 얼굴과 몸집이 눈앞에 아른거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곤돌라를 타고 내려왔다.

셋째 주는 엄마와 동생들을 위해 밴프 프리미엄 패키지, 3박 4일 일정의 여행을 보내드렸다. 피곤한 여정이었지만 장엄한 록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에메랄드빛 호수의 예쁜 추억을 가슴에 새기셨으리라 믿는다. 오가며 만난 멋진 록키의 풍광을 두 눈에 그리고 마음에 오랫동안 담아두고 내내 일상이 힘들 때마다 떠올리며 위안을 삼을 수 있기를…

막둥이 동생은 록키에서 비도 맞고, 눈도 맞고, 단풍도 구경하고 이 세가지를 한 곳에서 다 경험했다며 여행 소감을 얘기했었다. 다행히 구경할 때는 날씨가 좋아 헬리콥터도 타고 설상차, 곤돌라도 타고 두루두루 날씨 덕에 잘 둘러보고 올 수 있었음에 감사해했다.

떠나시기 전날 토요일, 캐나다 한국문협에서 매년 가을 주최하는 한카 문학제 행사가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여독으로 인한 몸살로 함께 하지 못하셨다. 대신 막둥이 동생이 팔이 아프도록 동영상을 찍어 보여드리는 거로 대신했다.
엄마는 내게 시 낭송을 잘했다며 칭찬해 주셨고,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던 나의 마음을 그렇게 달래주셨다.
마침내 떠나시는 일요일 새벽, 일찌감치 서둘러 7시에 공항으로 출발했고, 셀프 수속을 마치고 짐을 부친 후 아침 식사를 했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덤덤하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대신하듯 따뜻하게 포옹하며 그렇게 헤어졌다. 머지않아 다시 만날 것을 믿기에…
떠나고 나니, 좀 더 잘해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만 새록새록 맴돈다.
엄마 좋아하시는 시원한 생선 지리 한 번 못해 드렸고, 큰삼촌 먹고 싶다던 수제 버거집 한 번 같이 못 가고, 막둥이 삼촌은 얼큰한 한식이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미안한 맘이 자꾸 커진다.
지금도 의젓한 막둥이 삼촌이랑 큰삼촌 그리고 엄마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설 것만 같다.

2019년 9월의 그 기분 좋은 명분, 사촌 언니 수야와 스티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호주에서의 결혼 생활이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며 의지하는 평생 동반자의 삶으로 이어지기를….
또한 기꺼이 멀리서 와서 결혼식에 참석하고 축하해 준 친정엄마 그리고 두 남동생. 때론 명분으로 말미암아 뛰어넘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산들…
그 끝엔 기분 좋은 산들바람처럼 추억이 머문다.
런던 온타리오에 사시는 큰 이모님, 이모부님 두 분의 건강과 장수와 날마다 행복을 염원하며…
오늘도 우리 부부는 가진 게 별로 없어도 마음이 부자라서, 두루두루 베풀며 살 수 있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