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빗방울의 여행

 

박현정

여느 때와 같이 비가 오던 이 땅의 가을,
무거워져 아빠 먹구름에게서 떨어져 내려온 아기 빗방울
순간 발가락 사이사이를 간지럽히는 낯선 땅의 한기에 놀라
토독..! 비명을 지르며 먹구름들의 품에 돌아가려 하늘을 향해 튀어 오른다
주의를 둘러보니 여기도 저기도
온 세상을 뒤덮은 새빨간 불꽃을 닮은 나뭇잎들
폭신폭신 온통 희었던 자신의 고향은 어디 있나.
고향. 아기 빗방울은 결심한다
이 낯선 단풍국을 벗어나 아늑한 그곳으로 돌아가기로

아기 빗방울은 다른 낯선 빗방울들 속에 섞여 달렸다
정체모를 장애물들에 부딪쳐 몸이 여러 갈래로 흩어지고 모이기를 수백 번
자신을 꼭 붙들어 주던 그 손길들을 그리워하기를 수천 번
고된 길을 참고 참아 눈을 뜨니 펼쳐진 광활한 물웅덩이
옆에 우거진 푸르른 것들을 반짝이는 유리판에 넣어 놓은 듯 아름답기도 하다
분명 하늘에서도 내려다본 적이 있는 투명한 물웅덩이

그저 특별할 것 없는 강인데
여기서 보니 그 강물 속엔 또 다른 세상과 하늘이 있었다
이렇게 땅에서 보니 전혀 같지 않았다
자신이 그 강이 되어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젠 푸르른 숲에 손이 닿고 몸속에서는 생명체들의 움직임을 느낀다
그렇게 흩어지고 모아지며 이리저리 굴러 몸집이 커진, 아기 강물
아기 빗방울이 온 세상인 줄 알았던 그곳,
자신의 고향은 작은 한 점의 따뜻한 구름이었다
그 위에서는 너무나도 작게 보였던 이 곳,
단풍국에서 방황속의 그 작고 작은 아기 물방울은 아기
강물로 자라났다

여느 때와 같이 비가 오던 이 땅의 여름,
다 자라난 아기 바닷물은 끊임없이 자라며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