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가?
우리의 삶이 이렇게 되는 일이 전부이고 이런 일로 인해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도 이 일에 목숨을 거는 때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보상받는 일과 바로 직결되는 일이기에 채널이 그 곳으로 고정되어 있지만 자신조차도 그런 줄을 모르고 살아간다. 이 일은 많은 방법들이 동원 될 것이며 어느 곳에 기준점을 둘 것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누군가가 비교의 대상이 되고 분별과 비교와 비판이 따라붙게 된다.다시 말하자면 “나의 삶” 이란 것은 초라해 보일 뿐이며 남의 삶 그것 만이 눈에 들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 중에는 역할의 인지도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이런 일들은 내가 살아있음, 즉, 나의 본래면목 (본성) 이 확인된다면 살아가는 일에 의문과 이유의 대답이 필요치 않을텐데 이 본성의 체험을 못해 보았기에 이런 의문과 공허함을 이렇게 저렇게 메꾸려는 일들 중에 “내가 왜 살지?” 혹은 “나는 상대방 어느 누구에게 어떤 사람일까?”  “좋은 사람일까? 아닐까?”하는 갈등에 부딪혀서는 그런 일만을 확인 하려하고 ,그렇게 되지 않을 때, 비판과 미움이 함께 하게 되면 불안함이 동반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때, 일이나 쾌락에 몰두함으로써, 이런 불안과 불만 또는 부조리를 잊어 버리려고 한다.하지만 그때까지 손을 놓지 못하는 일은 강함과 약함이라는 삶의 언저리를 맴맴 돌면서 상대방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질까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하고 어떻게 나를 보일까 해서 나를 나타내 보일때는 최고로 강함과 약함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약하게 보이고 싶을 때는 불쌍한 나를 도와주고 배려해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상대방 역시도 그런 마음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큰 소리내어 욱박지르고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그럴 때 나의 모자람을 인정하지 못하기에 진실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써의 행동이 나오지 않게되고, 그런 점을 포장하고 좋은 사람 되려고 하고 완벽하려고 하지만 그 일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이렇게 질문해 본다
우리의 삶 중에 분별에서 오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은 진실로 있는 일인가?
그리고 이런 문제는 육체가 본능적으로 요구하는 원인과 결과의 일처럼 단순하게 가닥이 나는 일이 아니고 마음에서 일어 나는 일이라는 것이다.그러므로 인간의 갈등, 비교,욕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육체의 요구를 거부한다거나 ,끊어내거나,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서 되는 일은 아니다.그러기에 좋은 사람 ,싫은 사람과 행, 불행을 어떤 틀 지워진 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너는 상대가 너에게 뭘 해 주기를 바라느냐?”고 그럴 때, 딱히 바라는 것을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고 그냥 싫고 ,밉고, 그 미움을 상대에게 들켜서 어떤 불이익이 나에게 올까봐 불안해 하는 이런 마음이 진실로 있는 일이냐는것이다 .이런일들은 생각일 뿐이고 눈뜨고 꿈을 꾸는 일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아주 부조리한 존재임에도 그것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이 부조리함에서 오는 문제는 세상이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본질을 흐뜨러뜨리지 않고 꼿꼿하게 홀로 존재하는 이 본성을 확인하는 체험만이 꿈을 깨게 해 줄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이 일이 확인이 되지않았을 때에는,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어보려고 노력도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가 원망이 되고 억울한 맘이 고개를 들 때가 있다. 그럴땐, 비교로 인한 맘에 병이나서 내가 아프다는 것을 먼저 감지해야 할 것이다 .나의 아픔이니까 ….이럴때, 나를 학대하는 생각은 의지적으로라도 차단하고 그 답답한 맘을 누구 믿을 만한 사람에게 토해내는 임시처방이라도 필요한 일이며 이런 일들은 좋은사람, 나쁜사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며,그냥 몸에 감기 걸리고 배 아픈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났을 뿐이고 약 먹고 치료받아 나으면 그 뿐 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 배가 아프고 내 머리가 아프니 내가 나에게 뭘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의 치료보다 상대를 비난하고 흠집을 내어 결점만 이야기 한다면 그 상대는 더 이상 변하지 않고 그렇게만 살아갈 것이며 나는 내가 한 말로 인하여 괴롭힘을 당하고 살아갈 것이다. 그야말로 자승자박 인 셈이다.
상대가 변화하기를 바라는 만큼 나는 상대가 원하는 삶을 얼마나 채워주고 살았는가? 즉, 내 마음이 고장이 나 있을 때는 상대도 역시 아프고 병든 맘 이었기에 그럴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려고 하지는 않았던가? 그럴땐 , 도움의 손길은 어렵겠지만, 그냥 내버려두는 관용을 베풀어줄 수는 없었던가?내 배가 ,머리가  나아서 통증이 없어지면 자연히 웃게 되고 인상 찡그리지 않게 되듯이 이 꿈을 꾸고 있는 망상이 치료가 되면 상대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그러기에 상대의 구멍난 흠집 또는 좋은 점,다같이 함께 살아간다 .
어느 한쪽을 치워 버린다거나 유지하려고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이 길 ! 이것을 중도(라고도 하고 불이법 즉 분별하여 두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에 속지 않고 살아가는 유일한 길은 이 법 !을 체험하는 일이다.이런 가운데 시시때때로 바뀌는 부조리한 온전치 못한 마음이라면 , 그것은 본 마음이 아니고 생각일 뿐이며 , 이런 상태라면, 상대가 아무리 변화되어도 만족은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모두가 다 갖추고 있는 진여자성 즉,본 마음을 확인하여 경험하지 못했기에,생각에 휘둘려서 살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 길은 끝도 없는 투쟁의 길이 펼쳐질 뿐이다. 오늘이 이 본성을 체험하는 마음공부를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이다. 요즘 세간에서는 마음근육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말들을 많이 하고 있다. 마음근육은 마음의 아픈 곳이 치료가 되면 자연히 건강해지고 그렇게 되면 강해질 수 밖에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진정으로 “강함”은 두려움이 없어야 하며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분별되지 않고 이것으로 드러날 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