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최전선, 지구촌 한글학교 스토리 중 

송성분 (현)캐나다 써리한국어학교 교장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올 설날에는 우리모두 한복을 입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한글학교에서 보내온 가정통신문에 적힌 글을 읽으며 학부모, 학생, 선생님 모두는 다소 상기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즐거워하였다. 빨강반의 어린 친구 하루는 고사리 손으로 만든 예쁜 복주머니를 내게 자랑하며 세뱃돈을 넣겠다고 하였지! 그래 하루에게도 예쁜 한복을 입히고 복주머니를 달아주자, 그리고 멋진 폼으로 세배를 하게 해야지.
2017년 설날을 열흘 앞두고 한국에서 온 두 박스의 한복이 우리 한글학교로 전달되었다. 그때부터 나와 선생님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나이별로, 성별, 그리고 체형까지 고려하여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한복대여 상황을 파악 해야 했다.
우리 한글학교 학생들은 약 100여명이지만 학부모 할아버지 할머니 동생 등, 어느 가족은 여섯명 모두에게 한복을 대여해야 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 일은 힘들지 않았고 마냥 즐거웠다.
한복이 주는 의미는 내가 어릴 적 엄마가 업어줄 때 꼭꼭 싸매주던 포대기와 같이 포근하고 정겹고, 애정이 듬뿍 담긴, 한국을 향한 그리움 그 자체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복이 든 상자를 뜯어본 나는 이렇게 귀한 일을 추진해주신 한국의 관계자분들과 한복을 기증해준 학생과 학부모님들께 감사하였다.
한복에 동봉된 한복 기증 학생들의 손편지는 눈시울을 촉촉히 적셨다.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및 대구-프랑스 루앙 교육청간 협약 갱신에 따른 외국학생에게 보내는 한복 기증식 시행

이곳 내가 있는 캐나다 한글학교가 한국에서 보내주는 한복을 받게 된 것은 위의 글에서 보듯이 프랑스에 한복을 기증하는 행사에서 시작하였다. 물론 처음부터 이를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이 있는 줄 모르고 나는 우연히 한국에서 함께 근무했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 그분이 위의 외국 학생 한복 기증 운동에 관여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이곳 캐나다 한글학교의 사정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한국에서 캐나다로 한복을 보내줄 수 있는지를 묻게 되었다. 이렇게 연결된 사연과 사랑이 무르익어서, 마침내 태평양을 건너서 이곳 캐나다 밴쿠버까지 한복이 오게 되었다. .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한국에서 살 때는 한복이 이렇게 귀한 줄 몰랐었다. 캐나다에 와서 살면서 한글학교를 설립하고 한복의 정신적 가치에 눈뜨게 되었다. 나는 동포 2세와 3세, 그리고 한국에 대해 알고자 하는 현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교육하고자 했다. 한국을 잘 알리고 싶어서 해마다 명절 때가 되면 전통놀이 체험학습을 해왔는데 한복을 구할 수가 없어서 반쪽 수업이 되는 것이 아쉬웠다.
그동안 사진과 동영상으로 간접체험을 했었지만 이번 설날에는 직접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세배를 할 수 있었다. 윷놀이를 하고, 떡국을 함께 나눠먹었던 그해 설날은 한 폭의 아름다운 사진으로 남아 있다. 부스별로 마련된 팽이 돌리기, 투호던지기, 딱지치기, 공기놀이 등 신나고 재미있는 놀이도 즐거웠지만, 무엇보다도 가족사진촬영 부스는 종일 붐볐다. 이민 와서 한복을 한번도 입어보지 못했던 어머니 아버지들도 오랜만에 한복을 입고 눈시울을 붉히면서 자녀와 함께 병풍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다양한 모습으로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웃는 모습에서 행복과 아련한 그리움이 교차하는 듯했다.
캐나다 여성인 헬렌은 한복을 차려입고 드라마 <대장금>에서 보았다며 궁중의 왕비흉내를 내었다. 캐나다 남성인 데릭은 윷놀이를 하면서 어눌한 발음으로 ‘모가 나왔네, 윷이 나왔네’ 외치며 함께 시끌벅적 어울렸다. 학부모 닭싸움이 시작 되었을 때는 “엄마 이겨라! 아빠 이겨라”고 외쳐대던 아이들의 함성이 학교 운동장 가득 울려 퍼졌다.

글로벌 나눔으로 사랑이 피어나다

다음 날 이곳 캐나다의 동포 학생들은 그동안 한글학교에서 배운 한글로 정성껏 편지를 썼다. 편지봉투 안에 편지와 함께 한복을 입은 사진을 동봉해서 한국으로 보냈다. 한복을 기증해준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고맙다는 말이 가득했다. 그리고 덕분에 즐거운 전통놀이 체험학습을 하게 되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 아이들은 지금도 좋은 인연으로 한국과 연락을 주고 받는다. 이렇게 한국에서 보내온, 누군가의 장롱 속에서 잠자던 한복은, 이곳 캐나다 한인 동포들에게 따뜻한 사랑으로 전해져서 큰 감동을 준다. 이렇게 한복은 세계 곳곳에 한류를 전하고 있다.
우리 한글학교 학생 대부분은 한국인의 자녀들이다. 부모 모두가 한국인이거나 한 부모가 한국인경우는 모두 재외동포이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외국인이다. 외국인반 학생은 한국이 좋고 한국문화가 좋아서,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한글학교에 다닌다. 그래서인지 열정이 대단하다. 한국에서 보내온 한복을 입는 것도 너무 좋지만, 그보다 한국에서 보여준 사랑에 더욱 감탄한다. 이번 일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더 긍정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한복 기증은 한류를 알리는 일이 되고, 한국인의 사랑이 여러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한복 이벤트를 계기로 글로벌 생태를 사는 우리 자녀들은 세계시민공동체를 모국과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곳 캐나다에 사는 한글학교 학생들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은 그런 비전과 소망으로 한국의 학생들과 뜻을 나누려 한다. 어찌 우리만 그렇겠는가. 전 지구촌 1,600여 개의 한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우리의 꿈나무인 동포 자녀들도 모두 함께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더 큰 원을 그리고 싶어!

나는 이런 말을 자주, 아니 정말 지겹도록 많이 들어왔다. 한국사람들은 이민을 와서도 서로 뭉쳐서 협력하지 못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민족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외쳤다. 그 말은 틀렸다고. 이는 극히 일부를 보고 일반화한 것이며, 그 말은 틀렸다고 나는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다.
처음 이곳에 와서 한글학교에 봉사하게 되면서부터 겪은 많은 시련을 어떻게 다 열거 할 수가 있을까? 시련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다름없는, 한글학교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데서 생기는 것이었디. 우선 열악한 환경의 한글학교라도 구먹구구식 운영을 탈피하고 체계적인 운영 체제를 만드는 과정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나는 교육전문가이지 않은가. 알찬 수업 내용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학교를 운영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이런 노력은 점차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는 큰 호응을 얻었지만, 주변 다른 한글학교로부터는 칭찬은 고사하고 돌멩이를 많이 맞았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굴러왔고 누가 박혔다는 것인가! 모두가 조국을 떠나 이 먼나라에 와서 어떤 형태로건 힘겹게 살아가는 이미자들인데 말이다.
‘그래, 한복을 우리학교 학생들에게만 입힐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여기 저기 보내고 나누자’ 한복을 이웃학교 행사 때 빌려주었고, 또 더 많은 한복을 구하고자 한국으로 편지를 띄웠다. 나에게 이렇게 멋진 조국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행복한 일이다. 나의 부탁은 그들에게도 기쁨이라고 하면서 한국에서는 또다시 많은 한복을 보내 주었다. 나중에 보내온 더 많은 한복은 토론토 한글학교협의회로, 그리고 중동지역 오만 한글학교에로 각각 보내주었다.
이 운동은 아주 작은 움직임에서 출발했다. 대구 강동초등학교 김원식교장선생님은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작아서 입지 않고 장롱 속에 넣어둔 한복을 해외에 있는 한글학교 친구들에게 보낼 것을 권장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의 뜨거운 호응이 이어졌고, 이를 대구교육청에서 협력하여 많은 한복을 캐나다 밴쿠버로 보내주었다. 그렇게 시작이 되어 대구교육청과 연계하여 더 많은 나라와 학교에 한복을 보내게 되었다. 남미,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등의 먼 나라에까지 닿게 되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보람 있는 일인가! 더 큰 원은 이렇게 조금씩 그려지고 있음을…….
인권운동가 폴리 머레이(Pauli Murray)가 말했다.
“그들이 나를 따돌리려고 자기들만의 원을 그리려 할 때, 나는 그들을 포함하는 더 큰 원을 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