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2028길가에 핀 알록달록 꽃부터 햇빛이 내리쬐인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밴쿠버의 봄 날들~
하루가 다르게 어른스러워지는 우리 집 세컨더리 막둥이들도 봄바람이 들었는지 토요일이 되면 외출하여 맛있는 음식도 사 먹고, 평소에 갖고 싶었던 물건도 하나씩 구입하며 매 달 첫 주에 받은 용돈으로 노는 재미를 누리곤 한다. 이런 날은 교통비를 따로 챙겨주어 대중 교통도 타 보는, 평소와 다른 행보를 경험 하며 매번 어른들의 차에 이끌려 다니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홀로서기 시간을 보낸다.
그저 나의 당부는, 이모의 자존심인 아이들이 바깥 세상의 어른들에게 눈총 받지 않는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이고, 항상 하는 진부한 나의 말에  “예~”라고 대답 해 주는 아이들이 참 예쁘다.
고교시절, 친구들과 꿈꾸던 우리들의 대학 생활은 가정으로부터 독립이 먼저였다.
생각만해도 설레였던 그 때가 나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3년 전, 한국 대학 입시의 좌절을 갖고 이 곳에 상경한 지인 딸이었던 아이는 1년이 조금 넘는 우리 가정과의 생활을 뒤로하고 홀로서기의 독립을 하였다. 사실, 홈스테이 생활은 비슷한 또래들 사이에서 양보 할 것과 잃을 것이 많은 생활이기에 인내가 없이는 사실상 잘 지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알고 이해가 되었기에 스무 한 살 아이의 독립을 도왔고, 홀로서기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며 2018년을 맞이 하게 되었다.

서로가 싫거나 나쁜 일이 있어 헤어진 것은 아니었기에 늘 아쉬움도 많은 이별이었지만,두 가정 부모들의 관계는 여전히 신뢰 속에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은 항상 갖게 되었다. 이런 마음에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꼭 소통의 시간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쌓인 시간은 서먹함이 사라지고 편안함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적어도 나는 그랬었다.
밑반찬을 만드는 날이 되거나 스테이크를 먹는 날이 되면 아이 얼굴이 아른거려 집으로부르기도 하였고, 때로는 배달을 가기도 하였으니, 분명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시작 되었을 시간이 점점 지나며 ‘정’이라는 감정으로 그리고 어느 순간, 사랑임을 느끼게 되었으니 관계의 발전에는 시간과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무뚝뚝하던 아이의 성격도 어떤 특정한 날이 되면, 안부나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하였고, 첫 메시지를 받았던 2017년의 어머니 날에는 눈물이 왈칵 나기도 하였다.
이렇게 쌓아 온 감정들과 추억은, 책임이나 의무가 아닌, 편안함과 그리움이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다.
4월 초, 아이는 함께 하기를 원하였고, 1년이 넘는 시간동안, 파트타임의 여러 일들도 경험해 보았고 그런 시간들 중에 사람에 대한 상처와 학교 성적에 대한 부담감으로 아이는 섭식 장애까지 온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본인이 원하여 독립을 하였고, 중간에 힘든 부분이 있었음에도 쉽게 드러내지 못 하였던 이유는,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학생이지만 유난히 애교스럽지 못 하고 ‘쿨’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어느 날부터 정스러워지는 아이가 신기하였던 때도 있다. 마음을 여는 것이 느껴질 때는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어쩜, 이렇게 변하던 모습을 보이는 시기가 힘듦의 시작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눈치가 없었거나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였기에 더 깊은 곳을 살피지 못 했던 실수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스무 세 살의 숙녀도 아직은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 일 수 있고, 더군다나 유학생의 입장에서는 힘겨울 수 있는 상황들의 부딪힘이 연속이었을텐데……
SNS상에서 잘 먹고 잘 지내는 듯 보이는 모습들은 허상일 수 있음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고교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기에 이 곳의 대학생활은 순탄하지 못 했을 것이고 특히, 영어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부담이었을 상황도 당연한 것이었다. 이런 것을 알아차려야 했었는데……, 이모라고 불리는 나는 지금 생각하여도 고개가 숙여진다.
항상 부모님들께 주장하는 것이 대학 생활부터 아이들은 더 잘 관리가 되어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나였지만, 나의 일로 다가왔을때는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신경이 더 쓰였던 모양이다. 반성의 시간은 아이들을 책임지는 우리들의 매순간이어야 하는 이유가 이런 문제 때문인 것이다.

예전 우리 가정을 알며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지인들은, 지금도 아이들과 생활 하는 우리들 소식에 놀라워하거나 신기해 하는 분들이 있다.  늦게 합류하여 올해 대학 입시를 치루며 졸업을 앞 둔 아이들은 곧 내 곁을 떠나겠지만, 어린 시절 함께 시작하여 여전히 곁을 지키는 네 명의 큰 아이들과의 관계는 드문 일인 게 맞긴하다..
많은 홈스테이 가정들이 학생들과의 인연이 오랫동안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우리의 처음은 무지하였고, 의욕만 가득하여 함께 지내는 아이들을 모두 아이비리그에 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속상한 마음 갖지 않을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손에 쥐어야 하는 결과 보다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 지킴이 먼저였고, 좋은 정서와 성품 또한 중요한 부분이기에 다른 것들이 후순위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춘기를 유난히 심하게 치른 탓에 새까맣게 속이 타버린 기억에 힘들었 던 적도 있고, 아이들의 고집 때문에 지금도 가끔은 뒤 목을 잡을 일이 있지만, 그래도 크게 아프거나 다친 아이 없이 잘 자라 준 이들은 우리 가정의 보물들이다.
그리고,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 부부와 아이들 부모님과의 관계이다.
생활하며 중간에 이별을 하게 되었어도 예전보다 더 신뢰가 쌓이는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 두 부부의 노력 보다는 지금까지도 소중한 인연을 지켜 주시는 아이들의 부모님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보통의 부모님들처럼,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만 집중하는 관계였다면 어려운 일들은 많았을 것이다.  여전히 만나면 좋고,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으니 더 좋을 수 있는 관계에는 서로간의 믿음과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아이들을 사이에 두고 부모님과 우리 부부의 하나됨은 밴쿠버의 생활에서 가장 값지게 받은 선물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 사명의 길을 걷는……, 언제까지일지 정해지지 않은 시간까지는 내 자리에서 항상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항상 마음씨 좋은 엄마로, 가끔은 애교 있는 귀여운 이모로, 그럼에도 똑똑하고 현명한 관리자로 있을 것을 약속하고 싶다.

참, 섭식장애를 앓았던 우리 집 큰 언니는 함께 생활하게 된 첫 날부터 더 이상 음식을 뱉어내지 않는다. 아이가 목표하여 얻어지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들 보다도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음이 더욱 대견스러운 모습이다. 그 외의 모든 일들은 마음의 안정으로 다시 잘 이루어 나갈 것이라는 응원의 말도 덧붙여 본다.
소중한 것들을 지키며 조금은 천천히 가 보는 삶도 꽤 괜찮을 것 같다. ^^

JN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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