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정착기
1975년 이민창구가 어려웠던 시절 4살된 딸과 18개월된 아들, 우리 4식구가 밴쿠버에 정착하였다. 고용된 회사와의 고용 계약이 끝나갈 무렵인 1980년말경, 밴쿠버 현지에 거주하시는 교포분들이 진짜 기술자가 이민 왔다고 하면서 자기 차들을 수리하려고 제가 고용되어 있는 회사로 찾아오시는 교포분들이 많아져서 회사에서는 지정된 시간대에는 따로 도와드리기가 어려워 일과 후 현지인 직장 동료집 가라지에서 원하시는 분들의 차량을 하나씩 수리해 드리면서 작은 보람을 느끼며 이미 이곳에 먼저 와 살아가시는 교포분들과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라고 일찌기 나에게 자동차 기술을 가르쳐 이곳에 보내주셨구나 스스로 위로했다.
힘은 들었지만 나에게 주신 작은 소명으로 생각하고 성의를 다하여 고맙고 반가운 마음으로 이웃들의 차량을 수리해드리며 서로 즐거워했던 이민 초창기의 시절에 점점 양쪽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현지인 동료와 함께 공항근처 리치몬드에 조그마한 오토 바디 샵을 시작했다.
5년전에 고용되었던 회사에 있을때 부터 현지인들과 보험회사직원들에게 알려지게 되어 계속 찾아오시는 교포분들과 현지 영어권 이웃들도 애용해주어 ICBC ( Insurance Corporation of B C) 주정부 자동차 보험회사의 지정된Body shop으로 인정을 받아 보람된 마음으로 일을 하는 동안 ICBC 보험회사 신입사원들을 Korean Body man YOUNG이 일하는 SECOUND LOOK auto body shop에 와서 견학시키는 코스가 되어 그때 ICBC 직원들인 Estimator들에게 YOUNG이 더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나이가 드신 고참 한 분은 자기 아들을 나에게 소개하면서 나에게로부터 기술을 배우게 했던 일이 있을 정도로 내가 하는 일을 인정해주었고 또한 리치몬드 뉴스 지역신문에도 우리 공장과 나의 기사가 실렸다. 일에 대한 능력과 책임감 높은 직원으로 알려지면서 바디 샵은 고객들로 북적거렸다.
그 해에 한국에 계신 둘째 형님을 모셔와 지금은 옆동네에 사시며 자녀들과 함께 같은 교회에 나오시며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1980년 당시 우리 공장에 견학왔던 ICBC 신입 직원들이 세월이 지나 이제 모두 중역들이 되어 LOWER MAINLAND I C BC각 지역에 배치되어 근무하면서 젊은 동료들에게 “KOREAN BODY MAN YOUNG, HE has a more than body man skill”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입 소문이 나서 2003년도 써리 소재의 동료 바디샵 (T J Glass Odyssey Auto Body Shop) 을 인수하여 ICBC. VALET SHOP으로 승격되는 면허를 받아 모든 시설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고객분들에게Life Time warranty Job을 해 드리며 현재까지 계속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서 인정받은 기술과 자격증이 소중하여 현재까지도 찾아오시는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나의 능력에 알맞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자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편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소속된 단체, 교회, 또한 떠나온 내 나라에도 귀를 기울이며 현재 나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일찍이 나에게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지나온 세월이 벌써 45년째 들어가고 있다.
캠비로타리클럽
이민생활15 년이 되던 무렵 1990년 1월 27일 이 곳 밴쿠버에도 교민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우리 교포들도 이 지역사회에 참여하며 현지에 타민족들과 어깨를 나란히 사회 봉사활동도 하고 교제도 하며 문화교류도 하는 등 나와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 50 여명과 함께 Sponsor by Arbutus Rotary club의도움을 받아( R. I. DIST, 5040 Rotary club of VancouverCambie )라는 이름으로 시카코Evanston IL본부에 등록되어 국제 대내외적으로 크고 작은 봉사활동에 참여하였다.
북미주에서는 유일하게 한인들이 주멤버가 되어 있는 클럽으로써 널리 알려져 당시 해외에서 밴쿠버로 여행 오는 다른 나라 로타리안들이 밴쿠버 캠비 로타리클럽에 참석하면 한국의 정서를 느껴본다는 입소문을 듣고 우리 클럽을 방문하기도 했다.
현지 타클럽과도 교류하며 보람있는 RotaryClub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자부하며 운영되어 가던때인1999-2000년 제회장 임기중에 휘슬러 에서 열리는 5040지구 컨퍼런스에 참석하여 타지역회우들 350여명과 행사에 참석하여 진행하는 중에 International Flag Show 시간에 각국 나라국기가 알파벳순으로 무대로 입장하는데 A ,다음 B,순으로 J까지 나오고, 다음에 K이므로 마땅히 한국국기가 들어오며 애국가 반주가 나올줄 알았는데 한국 태극기가 안 들어오고 건너뛰어멕시코… 스페인이 들어오더니 끝이 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잠시 후 캐나다 국기가 백 파이프 반주에 맟추어 입장하여 맨 중앙 일본 옆 우리 태극기 자리에 캐나다 국기를 꽂아 놓고 모두 기립하여 ‘O CANADA’ 국가를 부르는 동안 나의 뺨에서 내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홀로 쓸쓸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총회 주최측에 알아보았더니 태극기가 없어서 그리 되었노라는 정중한 변명을 듣고 대회가 끝나고 본클럽에 돌아와 총회 참석보고를 하며 태극기를 보내도록 결의하여 바로 실행이후 이날까지 대회때마다 선명한 태극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대회때에는 함께 참석한 회우들과 때로는 우리 클럽과 인연이 있는 현지 회우들과도 태극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마치 서러웠던 그 밤을 보상받는 마음으로 위로를 받으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