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배움 들이 있다.
먼저 책으로 간접적인 배움을 경험하게 되고 학교에서의 교육으로 지식과 공동체생활의 사회성을 배우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인간관계안에서의 배움은 여러 종류로 우리에게 훈련이 되고 새로운 경험과 세상에 눈을 뜨게 해줄 때도 있고 너무나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리기도 하고 부대끼면서 몸살을 앓을 때도 있지만 역시 배움은 사람을 자유케 하고 여유롭게 할 때가 있음을 알게도 된다. 하지만, 옛말에 식자우환이란 정 반대의 이야기도 있다.
배움이 지식을 채우는 일에만 급급할때 에는 진실로 전해지지가 않고 그 앎과 삶으로만 지속될때 우환이 닥친다는 말이고 거기에는 고정관념이라는 규칙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배움이 진실일때는, 고정된 형태나 기준이 아니고 물흐르듯이 그때그때에 따라서
틀에 메이지 않고 행해진다는 것이고 사람을 자유롭게 해준다는 말이 이런거구나 하는 실감이 나기도 한다. 근,현대사의 교육방법에 길들여진 나의 교육 방법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본대로 따라하는 그 자녀의 자녀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같은 방법으로
행해지고 있을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그 교육이란 것이 지식을 한껏 떠 먹여주려고만 했지 소화를 시키는지 못하는지는 아랑곳 하지않고 있기에 자녀를 기르는 마음은 꽃을 기르는 사람의 마음과 같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마음과는 아주 동떨어진 마음인 것 같다.

요즘 들어 나에게 마음이 떨리기도 하며 실없이 실실 웃는 일이 생겼다. 이제 20개월이 된 손녀딸과의 일에서 배움의 고정관념이 무너져가고 있는 일이다. 세상에서 아주 흔하게 쓰는 말이 “사랑”일 것이다.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의 기억으로는 이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고 나를 낳아서 길러주신 엄마의 사랑과는 또다른 느낌이다. 손녀딸의 엄마인 딸과의 맺혀 있던 부분들도 그 아기로 인하여 충돌이 있을때도 풀어지게 되고 우리 가족의 특징이었던 “뭉치면 붕괴되고 흩어지면 산다”고 하던 관계들이 뭉쳐도 붕괴되지 않고 흩어지면 모이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전환된데에는 손녀딸의 역할이 엄청난 힘으로 작용한 것 같다. 이제 걸음걸이가 제법 탄탄하게도 되고 자기표현을 시원하게 말로는 구사할 수는 없어도 말을 알아듣고 싫고 좋음을 표정으로 표현하여 조금씩 소통되어가는 일에 기특하고 예쁜 짓이 한가득이다. 딸이 애기를 키우는 일을 보면서 까맣게 잊고 살았던 지난날 일들이 생각이 날때도 있고 이런저런 정보를 알아서 육아에 적용시키는 모습을 볼때면 딸이 참 대견스럽고 아이가 아이를 낳아 어떻게 키울까 싶었는데 애기가 쑥쑥 커가는 모습을 볼때면 아이고 ! 감사하네 ! 고맙네!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애기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도 나날이 다르다.
똑같은 장난감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루는 방법이 달라져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장난감에는 놀이를 통하여 학습으로 유도하고자하는 의도가 주어져 있다. 그것은 알파벳이 나열되어있고 숫자와 사물들의 이름 또한 그런 의미일 것이다. 교육을 시켜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떤 목적과 의도로서 그런 장난감을 공급하고 목적한바가 얻어지기를 바랄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냥 가지고 놀게 내버려두고 굳이 어른들의 그 목적을 주입시키려 하지않고서도 위험한 요소만 배제해주면 학습이 이루어지는 일을 알게 되었다.애기가 실로폰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영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난 그 장난감 악기에 정확한 음정으로 내가 아는 노래를 연주하여 애기가 즐거워하고 그 아이도 언젠가 그렇게 되게 하고 싶은게 나의 교육목표였으리라. 그런데 그 애기는 실로폰 건반을 때리는 채를 가지고 다른 물건의 이것 저것을 때리고 치고 하면서 그 소리들을 음미하고 있었다.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또 다른 물건을 두드리고 실로폰의 건반이 아닌 테두리도 두들겨 보기도 하고 그러고는 깔깔거리고 웃기도 했다. 나의 고정관념이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교육은 열림이고 경험이라는 생각을 하지못하고 누군가에 의해 정해 놓은 틀에 맞추어 획일적으로 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여기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날 ! 손녀딸은 나의 스승이 되어 있었다.
숟가락을 컵에 넣어 돌리고 공을 이래저래 굴리고 ,나무토막 블록 한조각이 장난감이 되어 이렇게 저렇게 거기에 빠져서 놀고 있었다.그런 일로 무언의 교수법으로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그리고는 그 장난감놀이가 재미가 없어졌는지 내 무릎에 엉덩이부터 갖다 부치고는 내 품에 안겨 뒹굴면서 베게를 던지고 까르르 웃다가 배가 고픈지 우유가 있는 방문을 Nock! Nock! 하고 두드린다. 우유 달라는 신호이다. 우유 한 병을 다 비우고는 책꽂이에서 힘들게 책을 빼어 들고는 두꺼운 책장 넘기는 일에 온 힘을 다 쏟고 있었다.어렵고 힘든 일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옆에 가서 보니 ,책의 활자는 거꾸로 들려져 있었고 책장 넘기는 일과 그림보는 일만이 최고의 일을 해냈다는 미소를 머금으면서 재미나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책은 읽는 거라는 것을 아는지 중얼중얼 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날, 그 아이는 , 책이라는 물건을 알고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중이었을 것이다.
책을 바로 펴서 들고 그 내용을 또박또박 정확하게 읽어주어야 하는 것만이 꼭 옳은 배움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번 알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냥 두꺼운 책장을 넘기는 일도 놀이이고 배움이며 책을 거꾸로 들고서라도 읽는 거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난 요즘 손녀딸에게서 많은것 을 배우고 그동안의 나의 고정관념이 허물어져가는 통쾌한 쾌재를 맛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