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 비가 내리고 있다.
빗방울이 수없이 파문을 만들며
크고 작은 그림으로 번져
그 안에 수 없는 시간을 채운다 해도
사실 그대를 잊으려 한 적 없다.

숲속에 숨어 있는 그대를 처음 만났을 때
나의 마음은 순백으로 세상을 색칠한 흰 눈처럼
경이로운 순간에 얼마나 많은 순수한 의미를 부여했던가..

가볍게 흔들리는 그대의 파문을 보며
직선으로 뻗어간 무심한 날들에
기초 감각을 잃어버리고
미숙한 관념을 수놓으며
오로지 물질 앞에 영원을 부여하려 했던
부질없는 아쉬움을 추구하며
잠시 상념에 잠겨 본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앞에 일어나는 일들을 알지 못하며
예측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을 본다.
우리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벅찬 우연 속의 현실까지도,

아직은 손에 너무 많은 것이 남아
욕심을 떨치지 못한 부끄러움을
그대의 파문처럼 지워야 하지만
그대가 만드는 것만큼
세상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또한 덜 가지고도 훨씬 더 많이 소유한 기쁨을 누리는 마음들이
실로 소중하게 남아 지속되고 있음을 인지하며
그대가 쉽게 욕망을 다스리는 모습을 응시한다.
호수에 비가 내리고 있다.
그대를 향한 소망에 기댄 채
잠시 현실을 벗어나 묵상에 잠기며
떨쳐버리지 못한 삶의 잔해들을
그대에게 맡겨 놓고 갈 길을 간다.
마치 물가 위에서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의 무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