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모 정당의 선출 직 정치인 후보 지명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후보 별 정견발표가 있었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금발의 여성후보는 높은 학력과 화려한 경력을 가진 데다 연설도 훌륭했다. 자신이 후보로 지명되면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조목조목 밝혔다. 여기저기서 박수갈채가 나왔다.
이어 나온 후보는 동양인인데 말주변도 별로 없고, 지역사회를 위해 자신이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없었다. 그냥 빙그레 웃기는 잘 했다.
나는 볼 것도 없이 그 금발의 여성후보가 되리라 확신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압도적인 차이로 동양인 후보가 지명되었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아뿔싸, 청중의 70-80프로가 그 후보의 동족이었다. 인물이고 정견이고 없었다. 우리 동족 중에서 후보가 나와야 된다는 일편단심 뿐이었다.
다민족,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은 모국 정치만큼 현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어차피 정치는 이민자소관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까.
그러나 내 동족이 정치인이 되면 달라진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속으로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은근슬쩍 동족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한다.
인지상정 아닌가. 과거 버나비 로히드 지역에 주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던 한인 정치인 S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시비비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나열할 수는 없지만 그녀가 있어서 한인사회가 제법 덕도 좀 보고, 지역사회에서 한인의 목소리도 낼 수 있었다.
이번에 버나비 메트로타운 지역에서 최병하(영어명 Paul Choi)씨가 주의원(MLA)출마를 위한 후보지명대회에 참석한다.
그는 SFU 법학과 학사 및 석사 출신으로, 로히드 부근에서 법률공증사를 하면서 한인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코퀴틀람 다문화주의 자문위원회 위원과 노스로드 실업인협회 회장으로 주류 지역사회에서도 다양한 봉사를 하고 있다.
한국의 사법고시와 비슷한 법률고시에 합격하여 토론토에서 검사시보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앞으로는 검사 로서의 그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4월 14일 오후 2시부터 버나비 메이우드 학교(4567 Imperial Scholl Burnaby) 대강당에서 후보지명대회가 열리는데 거기서 정견발표를 할 예정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한인들이 대부분이리라. 그러나 나는 수년 전의 상황이 재연될까 두렵다. 그때의 동양인 후보와 같은 민족이 경쟁자로 나서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해전술(?)에 주눅들 최씨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민사회. 우리끼리 서로 지지고 볶고 싸워도 타민족들 앞에서는 서로 단결하는 모습 보였으면 좋겠다. 중국 본토인과 대만인들도 우리와 북한처럼 일견 앙숙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인에 대한 사소한 비평도 그들은 무리 지어 대응한다. 더구나 정치인을 선출하는 데는 양안관계(중국과 대만과의 관계)는 없다. 그저 중국인일 뿐이다. 그래서 버나비에서 중국 출신 정치인들이 아주 오랫동안 지역구를 지켜 나간다.
부럽다. 수만 년 전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부근의 한 무리에서 파생된 극동인이 한국, 일본, 중국인이다.
극동인은 서로의 DNA를 나누어 가지고 있다. 예컨대 한국인은 몸속에 순수 한인 DNA 48%, 일본인 DNA 25%, 중국인 DNA가 26%로 혼합되어 있단다. 한, 중, 일 삼국인은 비슷한 유전자를 지닌다. 그러나 밴쿠버에서 제일 대접받는 극동인은 일본인이다. 중국이 꼴찌이지만 숫자 때문에 무시 받지 않는다.
케이팝(K-Pop)으로 비롯된 한류바람이 아직 식지 않은 이때다. 이 땅에서 우리를 대변할 정치인을 선발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많지 않다. 그러나 있다면, 온다면, 우리는 불문곡직하고 그를 응원하고, 후원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줄 건가를 바라기 이전에, ‘대한사람 대한으로’ 뭉쳐 우리의 위상과 실력을 널리 타민족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단순히 그가 한국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정치팔이가 아닌, 법지식에 정통한 진정한 실력을 가진 인재다.
캐나다 지역사회를 발전시킬 인재가 한인 커뮤니티에서 많이 배출된다면 한인의 위상은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된다. 이는 나를 위해서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갈 후손들을 위해서 더 소중한 일이다.
4월 14일의 지역정치인 후보 지명대회. 많은 한인들이 참여하여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하는 한인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