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네 살배기 아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무모하리만치 과감하게 감행했던 40일간의 미국 대륙 횡단 여행.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 2017년 봄 방학을 맞은 17살 막둥이 딸내미까지 대동한 우리 가족은 새로운 대륙 횡단의 역사를 쓰기 위해 떠났다.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로스앤젤레스, 라스베이거스 등 미국 서부의 주요 도시를 차로 관광할 2주간의 일정이다.
같은 도시들이지만 20년 전과 후의 모습이 어떻게 변모해 있을지 기대와 설렘이 교차한다.
20년 전에는 인터넷이 없어서 각 도시의 방문자 센터를 일일이 발품 팔아가며 쫓아다녀서 얻어 낸 귀한 여행 정보에 의존해 관광을 다녔고, 한 손에 쏙 잡히는 스마트 폰 대신 무거운 캠코더를 목에 걸고 카메라 삼각대까지 챙겨 다니며 수많은 사진을 찍고, 현상했었다. 아, 지금은 모든 게 너무나 간편한 세상이다.
참으로 변화무쌍한 여행길,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을 맞닥뜨리는 우리네 인생의 여정과 무척이나 흡사하다.
자동차로 여행할 때는 시시각각 급변하는 고속도로에서의 기후 변화로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안개 자욱한 새벽녘, 병풍처럼 끝도 없이 둘러쳐 진 산봉우리에 쌓인 만년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눈 덮인 산꼭대기인지 아니면 운무인지 도대체 경계를 찾을 수가 없다.
어느새 빗줄기가 후두둑 차창을 경쾌하게 두드리는가 싶더니 차츰 굵어진 빗줄기는 억수같이 쏟아져 고속도로의 시야를 뿌옇게 만들어 운전하는 손에 긴장감을 유발한다.
불과 몇 분 뒤 언제 그렇게 억수 같은 비가 왔냐는 듯이 쨍쨍 내리쬐는 햇살 그리고 또다시 낮게 깔리며 새까맣게 몰려오는 먹구름 떼……
태양이 쉴새 없이 구름 사이로 숨바꼭질하는 동안에도 푸른 초장에는 말과 양 떼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구름 가운데 가려졌을 뿐, 태양은 그 자리에 여전히 있었다. 단지 우리에게 안 보였을 뿐……
누군가는 말했다. “여행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라고…… 얼마 만에 누리는 가슴 벅찬 사치인가?
이 맛에 여행 하고 우리는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아닐까?
20년 만에 다시 찾은 오레곤 주 플로랜스(Florence)의 바다사자 동굴, 천혜의 자연 동굴에는 마침 대략 150여 마리가 모여 떼를 이루고 있는 장관이 연출되고 있었다. 바위 동굴 위에 널브러져 누워있거나 헤엄을 치기도 하고, 한데 어우러져 굉음을 내며 울부짖는 소리가 동굴 벽 여기저기 메아리쳐 울리며, 시야가 흔들리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코를 찡그리게 만드는 역한 냄새마저도 아이들은 잊은 채,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빼앗겼다.

태평양을 끼고 달리는 해안 고속도로 101, 쿠스 베이(Coos Bay)를 거쳐 밴든(Bandon) 주립공원의 등대가 있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어촌 마을. 나무를 깎아 만든 여러 동물 형상의 조각들과 신선하고 맛있는 해산물 식당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오직 썰물에 만 걸어서 갈 수 있는 등대, 배터리 포인트 등대 (Battery Point Lighthouse)는 저만치 바위산 위에 보이는데, 올라가는 길 양쪽으로 바다가 철썩이고 썰물에 바닥을 드러낸 젖은 자갈 돌밭을 밟고 오르니 등대 위가 가히 절경이다. 우리가 걸어 올라간 그 길이 타이드 풀 (Tide Pool)이라는 곳으로 양쪽 바닷물이 밀물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썰물에는 모세가 가른 홍해의 기적처럼 바닷길이 쫙 열리는 신비로운 곳이었다.
숲속의 키다리 거목들로 유명한 ‘Trees of Mystery’는 캘리포니아주 Klamath에 위치한 유명한 관광지이다. 인디언들이 영혼의 장소 ‘A place of Spirits’라고 부르는 그 숲으로 짧은 모험 길에 나섰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 형이상학적인 여러 모양의 나무들을 만나고 그들이 내뿜는 산소를 맘껏 들이마시며 원시림 속에서 저절로 힐링이 되는 시간을 가졌었다. 곤돌라를 타고 오르내리는 스카이 트레일도 이곳에서 만난 작은 선물이었다.
캘리포니아 북서부 해안 지대의 국립 공원인 레드우드(Redwood)에는 울창하고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크고 장엄한 미국삼나무가 빽빽하게 뒤덮어 멋진 숲을 이루고 있어 낮에도 깜깜할 지경이었다.
레드우드의 유명한 관광지로 ‘Shrine Drive Through Tree’라는 곳을 어렵사리 20년 만에 다시 찾았다. 나이테 하나가 한 살인데 이곳엔 3200년 된 나무 밑동이 있고 차를 타고 나무 사이로 운전해 통과할 수 있는 거목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드라이브 드루 나무로 통하는 도로가 붕괴된 채 아무런 안전 보호 장치 없이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샌프란시스코를 가는 동안 몇 개의 산을 굽이굽이 돌고 돌아 오르고 내리며 왔는지……
아찔한 높이의 낭떠러지 구간을 달릴 때면 잠시 눈을 붙이고 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마저도 없어지곤 했다. 산을 몇 개를 넘었는데도 가도 가도 끝이 없이 펼쳐지는 산자락에 계단식으로 가지런히 정교하게 심어놓은 포도나무들 그리고 농원들……
매일 아침 숙소를 떠나 새로운 목적지로 출발할 때면 그날 하루의 일정 가운데 어떤 멋지고 경이로운 선물을 만날 것인지 기대감으로 설렌다.

이번 가족 여행의 첫 번째 큰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금문교를 건너기 전에 해안가 도로에 위치한 조망대에 먼저 들렀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주홍빛 아름다운 금문교 다리 전체와 스카이라인을 먼저 감상했다. 골드러시 시대에 샌프란시스코 만을 부르던 이름에서 유래한 다리 이름, 골든 게이트 브리지.
여러 가지 복잡한 지형적 이유로 불가능하다는 공사를 어렵사리 완공시키며 흘린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방울 그리고 공사 중 떨어져 죽은 수도 없이 많은 이름 모를 중국인들의 수고와 헌신에 어느새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또 다른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Fisherman’s Wharf’ 선창가 관광지에 들렸다. 부둣가에 정박하여 있던 잠수함과 2차 세계대전 중에 전사한 52명의 잠수함 해군 병사들의 이름이 기록된 위령탑과 당시 쓰였던 프로펠러와 어뢰 등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빅토리아 건축 양식의 독특한 건물들과 비상계단이 대부분 바깥으로 통하게 지어져 있는 집들이 어느 오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명물인 전차를 따라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번갈아 오르다 보니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두 번째 방문했던 이번 여행의 큰 도시는 샌디에이고 항구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의 중요한 군사 항구 도시이다.
멕시코 국경 북쪽에 인접하여 있으며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미국의 관광 휴양 도시로 유명하다. 샌디에이고 동물원과 사파리 그리고 돌고래 쇼로 유명한 테마 공원인 씨월드가 이곳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들로 꼽힌다.
20년 전 씨월드에서 하루를 보냈었고 돌고래 쇼는 많이 보았기에 이번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는다는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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