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제2호 삐라에 내 이름이 거론되자 나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교민신문 여러 곳에 현재 회관 자산과 부채는 얼마라고 나타내는 대차대조표와 작년 한 해, 금년 한 해 수입과 지출명세를 상세히 기록한 손익계산서를 공시했다. 뚜렷하게 분류할 항목이 없어 기타수입이나 기타지출로 처리하는 수익금과 비용도 조목조목 내용을 밝혔다. 심지어는 회원명단까지 포함하였다. 그 바람에 무려 2면의 전면광고를 내느라 비용이 좀 지출되었다. 정은숙은 자기 돈으로 결제하겠다고 했으나 이것은 교민회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며 내가 만류했다.
재무제표 공시로 사람들은 교민회 재무이사가 은행지점장 출신이라서 역시 다르다고 했다. 이로서 정은숙에 대한 흑색선전은 일단락되고 문제없이 그녀가 차기 회장으로 재선될 것을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세 번째 삐라가 나돌았다.

‘정은숙은 모 재벌그룹 2세인 정현수의 그늘 속 여자인데 아이를 두 명이나 낳고 재벌그룹의 한 자리를 차지하려다 본부인에 의해 밴쿠버로 밀려 왔다. 정은숙은 서울에 있는 요정 삼청각의 의 잘나가는 기생이었는데 거기서 가야금을 배웠다. 한 번도 국악대학이나 학원 같은 데서 제대로 거문고를 배운 적이 없다. 정부 고위인사들에게 사업 잘 봐달라고 뇌물을 주기 위해 자주 삼청각에서 그들과 술자리를 하는 정현수가 정은숙과 눈이 맞아 한 살림 차렸고, 그 뒤로 쭉 첩 노릇 하면서 살았다. 이것이 정현수의 마누라에 발각되어 친자인정과 상속권을 포기하고 대신 거액을 챙겨 밴쿠버로 왔다. 정은숙이 사는 웨스트밴쿠버 저택은 3천만 달러에 해당되는 고급 주택인데 3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수영장, 농구장, 탁구장 시설이 있고 미니골프장도 있다. 고등학교 3학년생인 아들 하나와 1학년생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데 무슨 돈으로 그런 집에서 살 수 있느냐? 이런 부도덕한 여자를 어떻게 밴쿠버 교민사회의 대표로 뽑을 수 있겠는가?’

제3의 삐라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사실 교민사회는 만나는 사람들의 과거를 캐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남의 사생활에 간여하지 않는 것은 서양예절인데, 이를 따르기 보다는 캐나다로 이민 온 사람들이 자녀들이 정착한 후 함께 살려고 신청한 초청이민이나, 한국에서 돈 벌면서 아이를 유학시키는 경우 영주권이 있으면 대학 학비가 싸니까 이민신청을 하는 부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별로 한국에서의 과거를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잘 나가고, 걱정 없이 잘 살던 사람들은 남의 나라에 살러 오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보면 돈 많은 사람들은, 특히 사모님들은 서울 강남에 살면서 명품 옷, 가방, 액세서리를 몸에 휘감고 BMW나 벤츠를 타고 호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코나 커피 마시며 수다나 떨고 있지 않는가. 심심해서 관광이나 오면 모를까, 그런 부류들은 절대 이민을 오지 않는다.

사업에 실패했던, 직장을 잃었던, 아니면 그야말로 해외바람이 불어서 왔던, 집 떠나면 고생인데다 남의 나라에서 먹고 살려면 더 고생이다. 더구나 밴쿠버는 관광도시에다 노인들이나 선호하는 은퇴지이다. 어릴 때 부모 따라 이민 오거나 현지에서 태어난 젊은이들도 제대로 된 직장잡기가 힘이 드는데 한국에서 이민 온 1세대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 세탁소나 잡화점, 식당 등 비교적 긴 말이 필요 없는, 아니 고급영어를 할 필요 없는 가게를 운영하거나 그럴 돈도 없으면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저임금으로 일할 수밖에 없다.

어. 그거 나도 몰랐네. 이번에는 좀 데미지가 크겠어. 정 회장 말이야. 어렵게 사는 교민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턴데. 몸뚱이 하나로 돈 벌어 잘 먹고 잘 사는 여자, 좋아하겠어? 이것 참 큰일이네.

선배의 걱정은 현실로 드러났다. 한 치 건너 두 치. 밴쿠버 교민사회는 금방 소문이 확 펴졌다. 정은숙은 다니던 교회를 그만 두었다. 예배시간에는 ‘하나님아버지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남의 허물을 용서하고—‘목사님 기도에 모두 아멘 아멘 하지만 뒤돌아 서서는 서로 수군거리며 던지는 형제자매님들의 눈총을 정은숙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걱정이었다. 정은숙은 이번에는 아무런 대꾸도 없고 대응도 없었다. 모두 거짓말이고 모함이라고 신문광고에 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은 진실보다 루머에 더 현혹한다. 그러나 최소한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나는 무척 궁금했다. 정은숙의 침묵이 루머를 인정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더 큰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정은숙이 만나자고 했다. 한국에서 남편이 왔는데 내게 소개를 시켜 주겠다고, 메트로타운 쇼핑몰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11시 반에 만나자는 것이다. 한인상가 밀집지역 안에 한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한식당에서 만나면 여러 사람들의 눈에 띄어 루머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 터인데 왜 맥도날드이지? 온통 각색 인종의 젊은이들이 들끓는 그곳에서? 궁금했지만 남편이라는 사람이 더 궁금했다. 장소를 가릴 여유가 없었다.

정현수 입니다. 정 회장님으로부터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신다고요. 진작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제 사업이 바빠 지금에야 뵙네요. 바이어 상담차 북미 순회 중에 밴쿠버에 들렸습니다.

그가 건네준 명함에는 주식회사 대진자동차 부품 사장 정현수라고 적혀 있었다. 부평에 있는 공장에서 현대, 기아차 부품을 납부한다고 했다. 무슨 부품이냐고 물었더니 라디에이터 어퍼 서포트, 사이드 서포트, 프론트 펜더 에이프런, 사이드 멤버, 브레이크 패드 등등 백여 가지 된다고 했다. 나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 그저 고개만 끄떡였다. 엔진, 핸들, 사이더 밀러, 전조등, 뭐 이런 정도가 내가 아는 자동차 부품의 고작이었다.

성씨가 정씨라서 혹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일가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 정씨, 즉 나라 정씨가 아니라 곰배 정자, 정일권 정씨라고 했다. 밴쿠버 사회에서 그를 재벌 2세로 알고 있다고 하니 그는 펄쩍 뛰면서 자기는 자동차 정비공부터 시작해서 자수성가한 사람이라고 했다. 의아한 점이 좀 있었다. 재벌 2세니 운운하는 것은 사실 삐라에서 본 것이니 믿거나 말거나였다. 문제는 정은숙이 50대 중반인데 남편은 40대 중반정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연하남인가?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태도가 수상했다. 아내라면서 정은숙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그녀를 대학 축제에서 만났는데 한눈에 반해 오랫동안 연애를 했으며, 자식들을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밴쿠버로 유학 보내는 힘든 결정을 했으며, ‘부인이 저 때문에 고생이 많습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내 눈치를 힐끔힐끔 살폈다. 자기 아내에게 ‘부인’이라는 호칭은 좀 어색하게 들렸다.
뿐만 아니라 정은숙이 그를 대하는 태도도 애매모호해 보였다. 남편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막냇동생 대하듯 보였다.

나는 좀 혼란스러웠다. 내게 남편을 소개하는 의도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은 첩이 아니며 정실부인이라는 것을 증명해 달라는 것인 듯 했다. 그러나 그날 내 느낌은 그녀의 의도-만약 의도가 있었다면-와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이 사람은 분명히 그녀의 남편이 아닌 것 같다는 의심만 가지게 할 뿐이었다. 헤어질 때 연신 내게 굽실굽실하면서 점심식사라도 대접해야 하는 데 다른 약속이 있어서 미안하다며, 사모님, 아니 우리 집사람 잘 부탁 드린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무슨 사기극을 보는 듯해서 기분이 언짢았다. 그러나 정은숙은 여보, 여보 하며 거듭 그를 호칭하며 그의 팔짱까지 끼기에 나는 그녀를 믿기로 했다. 하여 회장선거전까지 열심히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삐라는 모두 날조된 것이며, 나는 직접 그녀의 남편을 만났다고 전하고 다녔다. 사실 나는 정은숙이 재선되기를 바랐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그 동안 교민회에서 명실 공히 조선시대의 영의정 노릇을 해 왔기 때문에, 이주일이 회장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는 이민 온 지 오래되어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고, 내가 정 회장 편에서 선거를 도운다고 알고 있는 이상 그가 회장이 되면 재무이사를 다른 사람, 그러니까 자기편으로 바꿀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이야. 한 30년은 되었지? 나 모르겠어? 기준범이야. 한성은행 입사 동기잖아. 퇴계로 지점에서 함께 일했지? 자네는 예금계, 나는 서무계. 아. 이사람. 왜 이리 놀라. 섭섭하네. 내가 그렇게 변했나?

다음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