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상 윤성민

낯선 비

 

비(雨)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人心動搖). 비는 우리가 잊고 있던 감정을 일깨우고,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마음의 조각들을 적셔 새롭게 빚어내듯, 비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안겨준다. 따스한 봄비는 신선한 공기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그 향기는 마치 세상이 새로워진 듯한 느낌을 준다. 차가운 겨울비는 적막과 고독을 더 깊게 하며, 창문을 두드리는 차가운 빗방울은 내면 깊숙한 곳까지 얼어붙게 한다. 비는 때로 아픔을 주지만, 그 아픔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곤 한다. 비는 자연이 준 선물이자,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비는 그리움이다. 비 오는 날이면 안개처럼 서서히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 때문에 슬며시 혼자 미소를 짓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울컥함에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창밖으로 내리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날의 소리와 냄새가 다시금 되살아나는 듯하다.

어릴 적 친구들과 비 오는 날 뛰어놀며, 빗방울이 얼굴을 타고 흐르던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비에 젖은 땅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와 따뜻한 온돌 바닥에 누워 있던 그 순간의 포근함과,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부침개의 고소한 냄새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캐나다에서의 첫 여름, 비가 오는 날이면 한국의 추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비 오는 날, 친구들과 함께 학교 앞 분식집에 가서 매콤한 떡볶이와 탱글탱글한 어묵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는 비가 오면 그 낯섦과 친구들의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왔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집 안의 고요함을 깨뜨리고,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캐나다의 한 겨울 날,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나는 급히 근처 카페로 뛰어 들어갔다. 카페 안은 전형적인 빈티지 커피숍의 모습이었고 따뜻하고 아늑했다. 하지만 밖의 비는 여전히 사납게 내리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빗줄기는 세차게 창문을 두드리고,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쥐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문득 한국에서의 비 오는 날들이 그리워졌다. 한국이라면, 사람들은 우산을 피고 걸어다녔을 것이고 학생들끼리 웃고 떠드는 모습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한국의 여름은 아스팔트에 운동화 밑창이 쩍쩍 달라붙을 만큼 혹독하게 더웠다. 중학교 1학년 여름, 나는 지독한 더위에 지쳐 있었다. 그러한 무더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여름이면 산 속으로 피신하곤 했다.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그면, 차가운 물이 온몸을 감싸며 더위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정자에 앉아 있으면, 바람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며 상쾌한 소리를 냈다. 그 시간들은 항상 큰 위로가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비석치기와 고무줄놀이를 하며 여름의 무더위를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공놀이를 하다 벌집을 건드려 혼비백산 도망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벌에게 여러 방 쏘였고, 그 아픔과 놀라움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산속에서 노는 것에 더 신중을 기울이게 되었다.

비는 성찰이다. 캐나다에서의 여름은 한국과는 사뭇 달랐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푸른 나무들이 우거진 공원에서 산책을 하며, 한국에서 느꼈던 무더위와는 또 다른 평온함을 느꼈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자전거를 타고 호수를 따라 달리며 자유로운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맞이하는 비는 부정적인 면이 많았다. 비 오는 날이면 유난히 향수병이 찾아왔다. 한국에서의 비는 추억과 희망을 불러일으켰지만, 캐나다의 비는 낯설고 차가운 현실을 상기시켰다.

한 번은 여름 폭풍우를 맞이했다. 낯선 땅에서 적응해가는 과정 속에서, 그 비는 나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폭풍우는 사나운 짐승 소리처럼 들렸고, 전혀 위로나 포근함을 주지 않았다. 그날 집에 돌아와 창밖을 보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비는 내 마음을 더욱 어지럽혔다.

한국에서의 비는 희망이었지만, 캐나다의 비는 불행이었다. ‘비’라는 한 단어로 캐나다 한국에서의 내가 느꼈던 차이를 이야기한 것이다. 이 차이는 실질적인 차이라기보다는 나의 태도나 감정, 즉 아직 캐나다에 적응을 못하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국의 비는 토종 진돗개 같았다. 순진하고 친근하여 다가가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익숙한 비였다. 반면, 캐나다의 비는 독일산 셰퍼드 같았다. 날카로운 눈과 무서운 이빨로 나를 향해 돌진하며 상처를 줄 것 같은, 정말 적응하기 힘든 사나운 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차 캐나다의 비에도 적응해갔다. 처음에는 무섭고 낯설게 느껴졌지만, 점차 그 비 속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쌓았다. 비 오는 날, 한국의 친구들과 영상 통화를 하며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캐나다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산책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비는 나에게 적응의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모든 사람이 다르겠지만 혹시라도 나처럼 캐나다의 비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를 내린다. 비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비 없는 세상은 농사도 망하고 자연의 아름다움도 잃어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비는 때론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다. 비는 나에게 성찰과 성장을 가져다주었다.

한국에서의 비는 나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과 희망을, 캐나다에서의 비는 나에게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과 성숙을 가져다주었다. 비는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