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쇼  단막극본>

<기획의도>
병들거나 가난한 부모를 모시기 싫어서 방치하거나 심지어는 유기하는 일이 빈번한 시대. 상속받을 재산이 있으면 마음도 없으면서 서로 모시겠다고 형제자매끼리 싸우는 세태. ‘아버지를 팝니다’라는 신문광고에 응하는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효도는 존재하는 가를 청취자들에게 물어보기 위해 이 드라마는 기획되었다.
<등장인물>
박복남: 남. 76세. ‘아버지를 팝니다.’라는 광고의 주인공. 그의 신분은 베일에 가려 있다.
정다운: 남. 42세. 홍대 앞 분식집 주인. 젖먹이 때 길에 버려져 고아원에서 성장. ‘아버지’라 불러볼 사람이 필요하다.
이순해: 여. 37세. 정다운의 처. 남편과 마찬가지로 젖먹이 때 버려져 같은 고아원에서 성장. 아버지를 사서라도 모시고 싶다는 남편의 뜻에 따르면서도 내심은 개운치 않다.
김만갑: 남. 56세. 흥신소장. 박복남의 부탁을 받고 ‘아버지를 팝니다.’라는 광고를 낸다.
정직한: 남. 14세. 정다운의 아들. 중학생.
정나래: 여. 11세. 정다운의 딸. 초등학생.
무명 1, 무명 2, 노인 1 , 노인 2. 용달차 운전수 등
#1 종로 탑골 공원 내
–  서울 도심에서 갈 곳 없는 노인들이 모이는 그들만의 공간인 종로 탑골공원. 한 때 세상의 주인이었던 그들은 이제 무료한 시간을 공원에서 같은 처지의 노인들과 함께 보내고 있다. 신문도 보고 바둑도 두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노인1: (신문 뒤적거리는 소리) 쯧쯧.. 세상 말세야, 말세.. 이것 좀 보라구!
노인 2: 왜 그래, 또? 뭔 사건이 났어?
노인 1: 이런 이런!! 자기 아버지를 천만 원에 판다는 광고가 다 났어.
노인 2: 어디 좀 보자. 신문 이리 줘 봐. 응 여기 광고가 있군.  ‘ 아버지를 천만 원에 팝니다. 희망자는 아래로 전화주세요’ 아니, 세상에…… 이런 걸 광고로 낼 수 있나? 사람을 어떻게 사고 팔아..? 설마 장기 매매에 판다는 말인가?
노인1: 그렇지? 천만 원을 준다고 해도 아무도 안 데리고 갈 텐데.. 천만 원에 판다니, 아무래도 수상해..
노인 2: 살아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장기를 판다는 말이지……설마 데리고 가서 설마…
노인 1: 자네, 끔찍한 상상도 한다. 공포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노인2: 아니, 데리고 가서 강제 노동 같은걸 시키려고 하나?
노인 1: 모르지.. 자네가 정 궁금하면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어때? 도대체 어느 작자가 이런 광고를 냈는지…… 설마 자식들이 돈이 필요해서 그런지……
노인 2: 아무튼, 세상 말세야.. 우리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이렇게 팔려가지는 말아야지……
#2 흥신소 사무실
– 전화벨소리. 사무실에 한가로이 앉아 있던 김만갑이 황급히 전화를 받는다.
김만갑: 여보세요. 행복 흥신소입니다. 아~~ 네~~ 광고 보고 전화하신다구요?
무명 1: (나직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판다니~~ 대체 그 아버지는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요?
김만갑: 지금 그분은 병마에 시달리고 있으세요. 아마도 간병인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간에 치료하느라 들어간 병원비만도 천만 원이나 된다고 들었어요.
무명 1 : (실망한 목소리로)그렇다면 재산은 좀 있으신가요?
김만갑 : 가진 재산도 물론 없지요. 병원 빚이 천만 원인데…… 그래서 그 광고를 내신 것 같은데요.
무명 1: (언성을 높이며, 격앙된 목소리로) 뭐라고요? 어이구~~세상에 미친 노인네가 따로 없네.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뭐 병든 노인네를 천만 원에 사가라? 에라 이 순 도둑놈들 같으니라고.  – 딸까닥 수화기 놓는 소리
김만갑: 여보세요? 여보세요? 끊었네. 이게 벌써 몇 번째야.
– 다시 전화벨소리.
김만갑: 여보세요
무명 2: (흥분한 목소리로) 도대체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그 광고 진짜예요?
김만갑: 흥분하지 마시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무명2 : 들어보나 마나 뻔할 텐데.. 사람들 놀리지 마시고 그 광고 당장 내리세요.
전화 끊어지는 소리
김만갑: 어휴~~ 아버지 살 사람 찾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전화벨소리
정다운: 광고 보고 전화 드렸는데요
김만갑: 네~~ 궁금한 점 있으신가요? 그 분에 대해서는 광고에 있는 그대로인데.. 천만 원을 드리는 게 아니라 주셔야 합니다.
정다운: 알고 있습니다. 사실은 저희 부부가 그 분을 한 번 만나 뵙고 싶어요. 아버지가 되실 분인데 얼굴이라도 뵈어야 할 것 같아요. 사시는 집을 방문해도 될까요?
김만갑: 물론입니다. 이렇게 진지하신 분은 처음이네요.
#3 종로 뒷골목 쪽방촌
이순해:  (숨이 차는 소리) 이렇게 좁은 골목에 집이 많기도 하네요.
정다운: 이게 모두 판자집이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집도 있어.
이순해: 아이구 더워.  목이 타네요. 집에서 물 한 병 가져 왔는데 좀 드세요.
정다운:  역시 당신이야. 목마른 참인데, 한 모금 마실까? (생수를 벌컥 들이키며) 아이구 시원하다. 자 이제 번지로 보니 조금만 더 가면 될 거 같아..
– 정다운, 대문번지와 종이 쪽지를 번갈아 확인한다.
정다운:  여보~ 여긴가 보네.. 드디어 찾았네.
이순해: 그러네요. 여기가 번지가 맞네요.. 안에 사람이 있으려나……
정다운: (대문을 노크한다.)  계십니까? 계세요?
4. 박복남의 쪽방촌 방안
– 콜록거리며 누워 있는 70대후반의 박복남 씨. 의아한 표정으로, 문을 연 젊은 부부를 살펴본다.
박복남: 누구신지요?
정다운: 박복남 어르신 맞습니까?
박복남: 내가 박복남이요 (콜록 콜록). 혹시 광고 보고?—나 같은 사람을 사겠다는  부부가 맞소? 아무튼 방으로 들어 오세요.
정다운: 아, 네. 감사합니다. 실례 하겠습니다.
– 두 사람 방으로 들어간다.
정다운: 안녕하세요. 어르신. 저는 정다운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제 안사람이고요.
이순해: 안녕하세요?
박복남: 예. 앉으시오! 방안을 치우지 않아서 좀 지저분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정다운: 아. 뭐. 괜찮습니다. 연세 드신 남자분이 혼자 사시면 다 그렇지요.
박복남: 이왕에 날 찾아 왔으니 내 얘기부터 들어 보시려오?
정다운: 예. 그러시죠. 말씀하세요.
박복남: (낮고 힘없는 음성으로) 난 사실 단신으로 월남하여 이 고생 저 고생 끝에 집 칸이라도 마련했고 나름대로 사업도 잘되 돈도 모았지요.  아들도 셋을 낳아 키웠는데 마누라는 그만 10여년 전에 저 세상으로 갔지요. 아들들이 장가가니까 제각기 흩어져 큰아들은 캐나다로 갔고 둘째는 미국으로 이민 갔고 막내는 한국에서 사는데 연락이 끊긴지 오래 되었지요.
정다운: 아이구. 저런. 아드님들이 모두 살기가 힘드셨나 봅니다. 아버님을 모시지 못할 형편이었나 보네요.
박복남: 내가 돈이 많았을 때는 서로 경쟁하듯 찾아왔었지요. 그러나 사람이 살다 보니 흥하기만 하는 건 아닙디다.  사업이 망해 가세가 기울여진데다 병까지 드니 해외 있던 자식들이 먼저 소식을 끊어 버리든군요.  휘유—(숨을 한번 고르며) 이제 물려줄 재산은 없지만 내가 늙어 죽기 전에 아들들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고향후배가 하는 흥신소에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더니 아들들이 몽땅 다 나를 만나지 않겠다는 거요.  얼마나 기막힌 일이요.
정다운: 저런. 마음이 얼마나 상하셨겠어요.
이순해: 금이야 옥이야 키운 자식들일 터인데.
박복남: (깊은 한숨을 내쉰다)후유— 이제 남은 건 쪽방촌 방 한 칸인데 건물이 재 개발 된데요. 여기 50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선다던데 결정이 되면 건설회사에서 이주비용과 입주권을 준다고 합디다. 그러니 천만 원 투자해도 본전을 건질 거요. 사실 나를 데려가기는 무리이고, 밀린 병원비가 천만 원인 그걸 누가 값아 주면 이 집을 등기 이전해 주려고요.
정다운: 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박복남: (이어 다시 한 숨을 쉬며) 지금 내가 전립선 암과 방광암이래요 언제 다른 장기로 전이될지 모른다네요.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그런데 이런 처지의 노인을 사겠다는 착한 부부가 다 있으니— 결정을 내려서 오셨겠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고 흥신소장에게 최종적으로 알려 주시요.
정다운: 네 저희는 생각 끝에 결정을 한 겁니다만, 어르신 말씀대로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약도 잘 챙겨 드시고 식사도 잘 하세요.
박복남: 고맙소. 이런 누추한 데를 찾아주어서 다시 한 번 감사 드리오. 살펴 가시요.
정다운: 안녕히 계세요.
– 정다운 부부 인사하며 나온다. 박복남은 물끄러미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 본다. 외로움이 깃든 그의 얼굴이 약간의 기대로 설레인다.

문인칼럼

facebook_밴쿠버 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