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포기하는 일과 참는 일은 거의 일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나의 생각이므로 다른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에 대해서라도 어느 부분, 내가 더 잘 알 수도 있고 어느 부분, 다른 사람이 잘 알 수도 있다. 나에게 포기하는 일과 참는 일이란 거의 같은 일이다. 포기한다는 것은 참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며 참는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을 의미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참다가 포기하는 일이 많다. 포기해야 해서 참아야 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포기한다는 말은 결정한다는 말이다. 결정했다는 말이다.
나에게는 결정하기 까지가 힘들지, 일단 결정하면 시간을 거슬러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해봐야 시간만 낭비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내가 내려야 하는 결정을 부추기거나 참견하지 않는다면, 그게 문제가 돼서 나를 곤혹하게 하지는 않는다. 어떤 문제이건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결정하려고 한다. 게으른 성품 탓이다. 오히려 나의 결정에 남이 개입하는 것이 내가 그 일에 시간을 끄는 것보다 더 힘들다.
나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사람이다. 할줄 아는 것이 생각뿐이라 나는 내가 햄릿과 같은 인간형을 아닐까하고 걱정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나는 그렇게 비극적인 인간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고 살아오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성찰하면서 많은 것을 새로 알거나 자신의 틀린 점을 인정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나의 문장에는 생각한다는 단어가 많지 않나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시도를 하지만 별 뾰족한 다른 수가 없다. 아마 표현력이 없어서 그럴 것이고 표현력이 없다는 것은 독서의 양이 적어서 일 것이고 결국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자가진단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다양성보다는 보다 좁은 의미에 더 국한하고 살았고 노력하기에는 참을성이 많이 부족해서 아닐까라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잘하기 때문에 참을성을 일상이라고 까지 생각하며 살았어도 그 참을성마저도 노력해서 가지게 된 성격은 아니다. 할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에 불과하다.
노력을 하지 않고도 여태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운이 매우 좋은 편이다. 포기와 참을성도 그렇게 형성되지 않았나한다.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교실에서 뛰쳐나가지 않고 수업을 듣는 척, 선생님에게 들키지도 않으려면 (선생님이야 다 아셨겠지만) 공상에 가까운 상상이나 선생님의 말씀에서 수업의 내용이 아닌 다른 나의 흥미를 돋우는 부분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 버릇은 나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詩作에도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지식의 깊이를 말하기에는 어림없이 부족한 공부 때문에 공부를 안 해도 누구나 알 수 있거나 누구나 새로 시작해야하는 분야에 관심을 가져서 그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보려고 했다.
단순히 메꾸려 한 것이 아니라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곳을 더 많이 찾아다녔다고 볼 수 있다. 장사로 친다면 틈새 공략이라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틈새만을 노린 분명한 결과가 나타나는 곳이 많다.
글은 쓰는 사람의 의도와 생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말은 글을 쓰는 사람이 의도한대로 글을 읽는 사람이 이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비단 글뿐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에게 원하는 대로 듣지는 않는다. 독자가 오히려 作者보다 더 많이 작자의 생각을 알 수도 있고 어떻게 보이고 싶어 하는 의도 까지도 노출되고 만다. 작자나 화자가 제아무리 감추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려 해도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옷 안에 그 사람의 보이고 싶지 않은 성품을 감출 수 없으며 화장으로 그 얼굴을 철저히 감출 수 없듯이 듣거나 보는 사람에게는 모두 다 보이고 들린다.
보이는 사람에게는 다 보인다. 우리가 진심을 더 가치 있게 여기며 진실을 존중하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사실 무섭게 느껴진다. 믿을 것은 믿고 믿지 못할 것은 믿지 않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에 더 많이 좌우되고 진실에 좌우되지 않는다. 내가 보는 세상은 달을 보고 있는 지구 사람들처럼 언제나 달의 같은 면만을 보고 사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