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법이 존재하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돈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는 한국의 단면이 아닐까 생각된다. 검찰도 강자의 수사를 꺼리고 판사는 유전 무죄 무전 유죄 원칙만 지키는 듯…
—뉴스타파가 보도한  몰카 제국 황제 양진호 회장 관련 내용
{집단폭행이 끝나고 취조가 시작됐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라고 하면서 양진호가 제 머리채를 잡고 때리면서 얼굴에 가래침을 수 차례 뱉었습니다.  가래침으로 얼굴이 범벅이 됐죠. 그래서 제가 소맷깃으로 가래침을 닦아내자 양진호는 다시 때리면서  ‘빨아먹어’라고  말했습니다. 안 빨아먹으면 죽일 것 같은 공포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시키는대로 빨아먹었습니다. 맞는 내내 이 사람은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 나를 이렇게 때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잔인한 폭행이었습니다.
한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는데,  양진호씨는  ‘내동생이다’라고 말했어요. 그 사람이 무릎 꿇고 있는 저를 발로 찼습니다.  그렇게 폭행이 시작됐어요. 사무실 곳곳을 굴러다니면서 맞았습니다. 소리를 내면 더 때려서 소리도 내지 못했습니다.  4명 정도가 폭행에 가담했는데, 한 사람이 두세대씩 때리고,  순번이 돌아오면 또 때리고,  그렇게 몇 번에 걸쳐 폭행을 당했습니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죽을 만큼의 모욕감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양진호 폭행 피해자  A 교수}

해마다 터지는 사건 사고들은 때로 고국을 향해 해바라기처럼 바라보기만 하는 외국에서 사는 교포들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 그러니까 왜 그곳에 관심을 두냐고 하지만 자석이 쇠를 끌어다니 듯이 몸은 캐나다에 있지만 마음은 늘 조국의 하늘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좋은 소식보단 나쁜 소식이 더 많다.
지난달에는 은혜로 교회의 목사가 신도들을 폭행하고 신도들이 신도를 폭행하는 기사로 국민들을 울분케하더니 아직도 피지엔 그 은혜로 교회의 농장과 식당 등의 기업이 건재하고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후속기사를 읽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폭행에 너무나 길들여진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국가 폭력 앞에 수없이 많은 양민들이 죽어나가야했던 제주항쟁사건이 나부마 사태라 불리던 사건들 그리고 광주항쟁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폭력 앞에 맥없이 쓰러져갔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동족상잔의 비극에 쓰러져간 많은 국민들 더 멀게는 나라가 없어서 마냥 당하기만 했던 일제치하까지 늘 폭력 앞에 쓰러져야 했던 민초들은 그저 갈대처럼 쓰러지지 않으면 불에 태워져야했던 것이다.  그리고 독재정권하에서 수 없이 많은 열사들이 민주를 외치다 쓰러져 갔다. 그러는 사이 가정폭력이나 사회폭력, 그리고 학교 폭력 앞에 살아남는법을 배워야했고 우리의 부모들은 정의를 가르키기보다는 나서지말고 살아남으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그러니 불의 앞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수없이 많은 군중이 있어도 일부선 동가들의 선동에 폭력에 속절없이 당하기만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나의 경험을 빌자면 어린시절 이웃의 폭력 앞에 부모들이 힘없이 당하는 것을 어둠속에서 동생을 지키기위해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봐야만 했고 그것은 평생을 트라우마로 마음에 갖고 살아야했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불의를 보고 그것을 말하고 증인으로 나서서 취조 같은 질문에 울음을 터트려야했던 초등학교 시절이 있었다. 어린학생에게 똥을 퍼서 고구마밭에 주라고 시키는 선생님이 있어도 그려려니 했다.  장애아를 놀리는 동급생이 있어도 말리지 못했다. 나도 따돌림 당할 것이 두려워서.  중학교 다닐때는 하교하다 불량배들한테 끌려가서 맞기도 했다. 같이가던 친구가 도망가고 나만 혼자 여러명한테 당하던 그 순간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중학교 선생님의 선도를 가장한 폭력은 공공연했고 검은 교복에 검정모자를 쓴 까까머리 중학생은 입학식에서부터 얼차려를 해야했다.  상급생 선도부의 공공연한 얼차려는 늘 공포의 학교였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학교였다. 내가 잘못하면 연대책임으로 얼차려와 빳다는 기본이던 그런 시절을 견뎌 낸 우리는 폭력이 당연하게 우리 몸에 베어버린지도 모른다. 제천 청록파 폭력 조직이 청량리까지 장악하던 시절 고등학교에  3000교육대에 끌려 간 동급생 후배들이 많았다.
그들은 다 폭력조직의 일원이었다.  당연히 학교는 폭력에 늘 노출되었다. 버스에서 앉아있는 학생을 발로 차고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심지어 버스기사도 모른척했다. 상업고등학교라 타자실습 시간에 타자기로 폭력배인 친구가 다른 친구머리를 내리찍었다.

폭력은 일상이었다. 그리고 청주 직업훈련원에 입학해서는 입학식 단상에서 원장이 교사를 주먹으로 쳤다.  학부형과 신입생이 보는 앞에서. 그리고 옥외 화장실 좌에서 우로는 기본메뉴였고 연병장에 살얼음이 언상태에 팬티바람으로 집합해서 좌로 굴러 우로 굴러를 하다보니 살얼음이 몸에 박혔다.
옥상에 집합해서 겨울바람에 팬티만 입고 두 발 벌리고 서 있기…
점호시간에 화장실을 기거나 원산폭격은 기본이었다.  그렇게 폭력에 노출된 상태에서 군에 갔다. 훈련소의 폭력이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그보다 더 힘든건 자대배치 받고 취침시간에 수송대에 불러내서 가슴을 치고 원산 폭격 시켜놓고 허벅지를 차고 실내에서 커튼치고 구타하고 그렇게 당하고 나도 그렇게 했다.  군대말로 꼽창 밑에 꼽창 난다. 폭력을 당한 사람이 폭력을 쓸 줄도 안다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폭력을 일상생활에서 늘 접하고 살았다. 그리고 그 폭력에 휩쓸리면 나도 어떻게 될 줄 모른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폭력 당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외면하거나 피하게 된다.  정의를 부르짖는 학생들이 최류탄에 맞는 걸 봤으니 앞에서 잘 못한다.
이제는 폭력이 없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학생이 있고 그런데도 여전히 폭력 앞에 두려움에 떠는 사회이다. 경찰은 사건이 끝난 다음에도 착해서 피해자가 이미 피해를 다당한 상태일 경우가 많고 빵을 훔치다 징역살이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야구방망이로 폭행해서 전 국민이 아는 사건임에도 재벌이라서 그냥 죄의 면죄부를 받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봐 왔다.
죄가 있으면 벌을 받는다는 기본도 안 되다보니 돈 있고 권력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빠져나가다보니 정의는 늘 개나 줘버려라고 말하게 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누구도 폭력 앞에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바꿀 의지가 있다면 바뀌어진다고 생각한다. 그 숫자가 미미하면 희생이 아주 크겠지만 말이다.
양진호 회장의 엽기적인 행각은 일본도로 살아있는 닭을 자르기 석궁으로 닭을 쏘기 등 을 직원들 워크숍에서 강요했다고 한다. 직장내 폭력인데도 직장을 잃지 않으려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양진호 회장은 그가 운영하는 위디스크는 몰래카메라(성폭력등) 동영상을 올리는 웹하드 기반을 제공하는 업체인 한국 미래 기술 회장이다.
또 한성 폭행 피해자들이 동영상을 지워달라고 요청하는 동영상장의 업체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이중으로 수입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여성의 유작을 계속성 폭력 동영상으로 업로드하여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는 성폭력을 통해서 1000억 이상을 번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폭력을 즐기는사회의 덕을 본 것이라고나 할까. 언제 우리 사회의 폭력이 사라질 수 있을지 그것이 궁금하다.

전재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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