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금란 (전 밴쿠버 한인회장)

사람이 너무 많았다. 유명 관광지뿐만 아니라 공항이나 시내 거리엔 인산인해였다. 매년 영국을 찾았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은 처음이다. 올해 유럽은 무척이나 더웠다. 가끔 국지성 홍수가 이어지면서 날씨 또한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럽은 온통 사람으로 가득한 축제장 같았다.

 

신문에서 전하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과잉 관광이라는 말이 과장은 아니었다. 오버투어리즘은 관광지의 수용 한계를 초과하여 지나치게 많은 여행객이 찾아오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의미한다. 이태리 같은 곳은 심지어 입장료를 받기도 했으나 밀려드는 관광객을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요즘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크로아티아의 해변 도시 두브로브니크는 주민 1명당 관 광객은 28명이다. 그리스의 유서 깊은 유적지 로도스섬에는 주민 1명당 관광객은 27 명이다. 이태리의 베니스는 22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러니 관광이나 여행이 아니라 아비규환이다. 관광 인프라가 상당히 발달한 지역이지만, 여행자를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이런 현상을 어떤 사람들은 중국 관광객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살펴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올해 스페인을 찾은 영국 관광객이 1천만 명을 넘었다. 그리고 프랑 스인들은 700만 명이 바르셀로나 등지를 여행했다. 영국의 유명 관광명소마다 사람이 넘쳐나고, 시내 이름난 레스토랑에는 줄을 길게 늘어선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영국의 쇼핑거리 등은 인산인해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앞으로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은 여름을 피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 같다. 봄이나 가을이 아마 가장 좋은 계절 같다. 물론 여행을 아는 멋쟁이들은 유럽을 겨울에 즐겨 찾는다.

 

아들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일찍 IT 산업에 뛰어들었다. 시애틀에 본부를 두고 직원 200명을 가진 중견 회사로 키웠다. 지난 몇 년간은 유럽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서 지내고 있다. 이번 여름에, 런던에 간 것은 올해가 골든 주빌리 (Golden Jubilee)이다. 아들이 50세 생일을 맞이했다. 한국에서는 회갑을 크게 생각하지만, 유럽과 북미에서는 50세 생일을 가장 성대하게 기념한다. 올해는 아들뿐 만 아니라 며느리도 50세가 된다. 그래서 함께 골든 주빌리를 기념했다. 가족과 친지들이 모이고 가까운 지인들이 함께하며 50회 생일을 축하했다. 생일 파티는 자택의 가든에서 저녁 7시부터 열렸다. 120명이 넘는 하객이 초청되었다. 영국, 미국은 물론 헝가리, 스웨덴, 일본 및 한국에서 손님이 왔다.

 

나는 아들과 며느리가 호랑이띠라서 호랑이 문양이 그려진 고급 접시 2개를 선물했다. 남편이 스웨덴에서 부모에게 받은 24K 금반지 다섯돈을 아들에게 물러주었다. 전문 악단이 초청되어 밤 2시까지 먹고 마시고 춤추고 흥겹게 보냈다. 아들네는 런던 상류층의 고급 동네에서 산다. 주변의 이웃들도 모두 초대 되었기 때문에 밤 늦게까지 소음을 일으킨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골든 주빌리는 서양에만 있는 전통은 아니다. 조선의 영조 (제21대 왕, 1694-1776) 때 50회 생일을 맞아서 오순 잔치인 어연, 궁정 잔치를 했다는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나온다. 원래는 신하들이 영조에게 오순 잔치를 크게 열 것을 청했다. 영조는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고달픈 상태인데 궁정에서 큰 잔치를 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신하들의 요청과 대왕대비의 권유에 못 이겨 결국 좀 축소된 오순 잔치를 허락했다. 영조 대왕은 백성을 생각한 성군이셨던 것 같다. 미셸 오바마도 백악관 시절에 50회 생일을 맞이했다. 그때 500명의 지인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모여 생일잔치를 열었다. 비욘세, 폴 매카트니, 스티비 원더 등이 참석 했다. 새벽 3시까지 춤 파티가 열렸다. 테니스계의 여왕 빌리 진 킹, 농구의 살아있 는 전설 마이클 조던 등도 참석했다. 골든 주빌리를 이렇게 성대하게 기념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서양의 전통이다. 인생에서 50세가 가장 전성기이다. 허둥지둥 달려온 인생을 돌아볼 나이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세월을 생각하는 시점이다. 8월 말 밴쿠버에 돌아오니 여기는 적막강산이었다. 런던과는 달리 너무 조용했다. 여름 한 철 관광객이 밴쿠버를 많이 찾는다. 그러나 유럽과 비교할 수 없이 한가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밴쿠버를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