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어른이 된 지금,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지나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부럽고 희망적이게 보인다.  어른들은 이들의 어린 세대로 돌아가고 싶은 꿈을 꾸기도 하는데, 아이들의 생각은 어떠한지가 문득 궁금하였다. 다섯 명의 아이들에게 현재가 만족이 되는지를 물으니 두 아이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며 지금의 현실이 싫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하였다. 큰 이야기 거리는 아니지만 고민하며 또 안타까운 등교길 아침이었던 이유는, 20대가 곧 될 지금까지도 부모님의 관심이라는 명목의 간섭을 받고 있는 아이들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전히 지금처럼 10대가 좋다는 아이들은 아직은 어린 탓일까? 부모님과 작은 갈등도 겪지 않고 칭찬하는 말과 귀여움을 받고 있는 평온한 생활이 대부분이니 이 시기가 나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른이 되고 픈 속사정은 어쩜, 간섭과 제재를 빨리 벗고 싶은 마음일 지 모르겠다. 이런 이유에서, 어른들의 인생에 대한 덕담은 고마움 보다는 귀찮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함께 생활하며 좋은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이기를 바라지만, 자녀 교육과 양육은 정답이 없는 외로운 길이기에 그저 시행착오를 계속 반복하고, 반성과 위로가 계속 되는 끝없는 의문의 행보인 것 같다.

어느 첫째 날:

서로 다른 성을 가진 아이들의 동거는 9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보냈기에 갖추어야 하는 예의가 무너질 때가 점점 늘어나는 듯 하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작은 일에도 섭섭함이 종종 드는 건 어쩌면, 나를 되돌아 보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가 아닌 가 싶다. 그 날 주일 예배는, 여느 때처럼 평화롭고 경건한 자리였다. 찬양 봉사 활동을 오르기 위해 준비하던 우리 아이에게 속이 보일 듯 위태로운 치마 길이에 대해 한 마디 한 것이 화근의 시작이 되었고, 상한 마음 때문인지 예배 시간을 화장실에 숨어 보이지 않아 걱정 되는 마음 반, 지옥 같은 나머지 마음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남자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여자 아이들에 대한 양육은 딸 가진 어머니들이 모두 그러하듯 참으로 조심스럽다. 어른들의 시선을 가볍게 여길 수 없고 조신하고 반듯하게 보였음 하는 마음으로 한 마디 꺼낸 것이 삐침으로 돌아오고, 음식도 먹지 않으며 밖으로 도는 걸 보니…섭섭해하는 나의 문제인 것인지 그 아이의 톡톡 튀는 개성이 문제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부모 된 마음의 평가는 내 스스로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젊은 우리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비슷한 일을 경험할 때, 어린 시절의 이런저런 기억을 떠올리며 성숙한 어른의 생각으로 변화 될 것이다.  내 어린 시절, 교복을 벗고 외출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을 보수적인 아버지는 야단 치셨지만, 나를 이해하는듯 애쓰셨던 엄마는 옷을 가방에 넣어 주시는 센스를 보이셨던 기억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만 중요시 하는 나를 반성하게 하였다. 사실, 우리 집 세 숙녀들은 최고의 딸들이다. 자신들의 젊은 문화에 나이 많은 나를 동행 하기도 하고, 내가 외출할 때면 치장을 챙겨 주는 다정스러움도 보이니 이만하면 괜찮은 모녀 사이 일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해 보지 못하였던 내 무뚝뚝함은 이렇게 반성이 되고, 이 아이들로부터 받는 사랑에 감사함이 매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너희가 바라는 완벽한 모습의 이모나 엄마 였다면 좋았을 걸~미안할 때가 많구나. 치마 짧다는 말은 예배가 아니었다면 안 했을 거야.  멋 부림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니 엄마 된 마음으로 한 말이었어. 너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가끔씩 튀어 나오는 고리타분함을 이해 해 주렴. 비록, 대가를 받으며 돌보게 된 관계이지만, 너희는 나에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단다. 함께 웃고 울고 아팠던 시간에도 엄마였기를 바랐고, 지금도 엄마이고 싶은 그 마음 하나만으로 모든 게 덮어지는 이유여도 좋겠다 싶은데…  우리들의 9년 시간이 소중한 것처럼 다시 한번 웃으며 지나갔음 좋겠다. ‘라고 보낸 메세지에는 아이를 사소한 갈등 때문에 잃고 싶지 않은 내 간절함이 들어 있었다. 모든 사람과 물질은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유년시절에는 엄마 아빠 밖에 없을 약한 모습이지만, 이성을 만나고 사회인이 되어가며 부모는 조금씩 멀리 하는 존재가 되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슬프고 외로울 수 있는 자연의 이치지만, 서로의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기에 계속 두드리고 다가서야할 마음이다. 아마도 내 진심이 서로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따뜻함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기대도 하여본다.
어느 둘째 날:

아들이 새벽에 안방으로 건너와 아기처럼 잠을 청하는 보기 드문 날이었다.

잠을 깨우려 과일 한 입을 넣어주니 아기 참새처럼 받아 먹는 모습에 잠시 스무 살의 아들이라는 걸 잊는 시간이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달려가는 아들에게는 학창시절 경쟁관계 비슷한 친구가 있었다.

아마도 전 날에 들은 소식이었나 보다. 미국의 명문 대학에 합격 하였다는 친구의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단체 안에서 그들도 모르게 만들어진 1,2 등의 관계는 당시에 그리 편하지 않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분명 아들은 복잡한 마음을 내색하고 싶지 않았을 터인데…부담이 생겨서일까? 평생 아들 편일 수 밖에 없는 엄마인 내게 눈을 살포시 뜨며 대화를 청하는 내용은 ‘엄마, 그 때 선생생님들과 다른 친구들은 내가 훨씬 똑똑하고 잘 한다고 했었는데, 그 때는 몰랐지만 그 아이에게는 내게 부족했던 욕심과 열정이 있었던 거 같아요. 이제 시작의 출발선이 달라져 버렸으니 10년 후에는 나 보다는 훨씬 좋은 위치에 있겠죠?’ 라며 말문을 여는 것 이다. 그리고 그 날 밤 꿈 얘기를 늘어 놓는데…꿈 속에 자신은 숲 속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듯 서 있었고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고 위로는 받았지만, 자신을 구하러 올 수는 없었던 꿈이었다고 한다. 자기 처지와 비슷한 꿈인 것 같다고 힘이 빠져 얘기 하는 아들을 보며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함을 표하였다. 주어진 영리함으로 성과나 능력을 어렵지 않게 얻는 경우가 많았던 내 아들이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 한 것이다. 이제부터 어쩜 아들은, 목표를 위해 좀 더 노력할 것이고, 구하고자 하는 성실함이 언젠가는 빛을 받는 것을 알았기에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생긴 것이다. 가진 재능의 발전으로 힘 없고 도움이 필요한 세상에 보탬이 되는 어른이기를 바라는 어미의 마음도 이제는 이해 하는 듯 하니, 이 보다 더 값진 경험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상태를 부모에게 열어 주는 내 아이가 나는 자랑스럽다. 비록, 성숙함의 시작이 조금 늦을 수는 있지만, 20대와 30대 후반이 되어도 우리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될 것이라는 뿌듯함도 있으니 좋은 아침이다.
내가 낳은 아들이든, 가슴으로 함께 한 우리 아이들이든 그 피의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상황이든 아이들에게 따뜻함과 인생의 선배로서 좋은 영향력을 선사할 수 있는 관계라면 그것으로 우리들의 시간은 가치가 있는 듯 하다. 아들과 아이들의 20대는 분명히 좌절과 극복을 반복하는 젊은 날을 맞이할 것이고, 그럼에도 일어서기로 값진 것을 얻어내는 삶이 될 것이라는 희망도 보인다. 그리고, 그 끝은 감사함으로 항상 미소 지을 수 있기를 우리 어른들은 오늘도 응원한다.JNJ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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